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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이 시대 무력한 젊은이의 초상



‘N포 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은 어디에 서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박솔뫼(32)의 두 번째 소설집 ‘겨울의 눈빛’에는 시대의 우울을 한없이 무겁게 느끼는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 도사린 위험을 예민하게 감지하지만 별 도리를 찾지 못하는 무력한 이들이다.

수록된 단편 9편 중 표제작인 ‘겨울의 눈빛’은 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원자력 사고가 난 상황을 가정한다. ‘나’는 한 극장에서 원전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다. 이 영화는 발전소에서 20여㎞ 떨어진 부산 해운대에 살던 사람들이 겪은 일을 담고 있다. ‘나’는 영화를 통해 사고가 만들어낸 폐허를 본다.

‘나’는 왠지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인공은 “차라리 한국수력원자력공사를 폭파하고 그곳의 간부들을 납치해서 인질극을 벌이는 말도 안 되는 그런 영화를 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주인공은 관람평을 묻는 감독에게 악평을 쏟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지금 일어나는 그 사건, 바로 그 일을 자신의 눈으로 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피로와 기만을” 느낀다. ‘나’는 뭘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화가 나고 언제나 견뎌야 할 모멸감이 큰 사람이다.

‘너무의 극장’에는 극장에서 일하는 조명 오퍼레이터 ‘나’가 나온다. 연극 ‘겨울이야기’가 공연되는 곳이다. 그런데 관객인줄 알았던 자들이 무대에서 배우를 무자비하게 내려친다. ‘부산에 가면 만나게 될 거야’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라는 계약 내용의 애매함을 놓고 씨름하는 작가 ‘나’가 나온다.

화자들은 하나같이 허무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모호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계속 무언가를 본다. 매끈하게 정돈되지 않은 문장들이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한다. 부산타워를 보고(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영화를 보고(겨울의 눈빛) 공사장을 보고(주사위 주사위 주사위) 연극을 본다(너무의 극장). 박솔뫼는 작가의 말에서 “그저 어떤 자리에 멈춰버리는 것, 멈춰버리는 공간을 겹쳤을 때 그것이 내게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줄곧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들은 현재를 황량한 겨울로 느끼는 오늘날 청춘들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울지 모른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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