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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히트작 성공 요인은 ‘친숙한 놀라움’

‘스타워즈’ 시리즈는 지금까지 4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영화계 최고의 히트작이다. 데릭 톰슨은 이 시리즈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분석했다. “스타워즈는 여러 장르에서 따온 수백 개의 클리셰 조각들을 하나로 모아 우주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낸 수많은 영화 ‘모음’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은 2015년 12월 개봉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얄팍한 메시지가 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장 서점에만 가도 이런 책은 차고 넘치니까. 히트작을 만드는 비법을 가르쳐주겠노라 선전하는 책에 속아 넘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책 ‘히트 메이커스’는 좀 다르다. 허투루 넘기기엔 아까운, 유용하면서도 근사한 조언과 눈길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사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책을 쓴 데릭 톰슨(31)은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다.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이라는 매체에서 부편집장을 맡고 있다. 그는 심리학 경제학 경영학을 넘나들며 세계적 히트작의 세계를 그려낸다. 수많은 케이스를 그러모아 하나씩 살피면서 이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를 간명하게 뽑아내는 작법이 예사 솜씨가 아니다.

일단 내용부터 개괄하자. 가장 먼저 등장하는 히트작의 성공 공식은 ‘친숙한 놀라움’이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 그리고 불안과 이해라는 양극적 요소를 적절히 결합해 의미 있는 순간을 창조할 수 있어야만 최고의 ‘히트 메이커’가 될 수 있다.”

독일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자장가’를 시작으로 영화 ‘스타워즈’, 베스트셀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등을 도마에 올린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인기 비결도 분석한다. ‘친숙함’과 ‘놀라움’ 가운데 방점은 전자에 찍혀 있다. 새로운 것을 찾는 데만 골몰하지 말라는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가령 스페인에서는 2014년 대중의 사랑을 받은 노래 46만4411곡을 토대로 과거 히트곡과 요즘의 인기곡을 비교했는데, 히트곡의 상당수는 코드 진행이 유사했다. 대중이 익숙한 것을 즐겨듣는다는 방증이었다.

사람들이 친숙한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결국엔 이런 콘텐츠를 즐긴다는 사례는 한두 개가 아니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은 1990년대 말 스포츠 중계 외에도 드라마 코미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였다가 위기를 맞았다. 새로 취임한 사장은 회사의 문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ESPN이 분식점처럼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음식을 잡다하게 내놓는 곳이 돼버렸다고. 결국 ESPN은 시청자들이 이 채널에서 보고자하는 친숙한 콘텐츠인 스포츠 중계나 스포츠 뉴스에 집중하면서 다시 인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 같은 히트작의 공식은 프랑스 출신 산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1893∼1986)가 내놨던 이론과 유사하다. 로위는 코카콜라 병이나 럭키 스트라이크 담뱃갑을 디자인한 20세기 최고의 히트 메이커다. 그는 생전에 ‘마야(MAYA·Most Advanced Yet Acceptable)’ 이론을 주창했다. 히트작은 가장 진보적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근거 없는 바이럴 신화’라는 제목을 내세운 챕터다. 저자는 ‘입소문의 힘’을 깎아내린다. 바이러스처럼 어떤 상품에 대한 호평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져 성공을 거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2012년 트위터 메시지 수백만 개의 전파 경로를 조사한 결과를 들이댄다. 이들 메시지의 90%는 온라인에서 전혀 확산되지 않았다. 7번 이상 공유된 메시지는 전체의 1%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히트작은 어떤 경로를 통해 탄생하는 것일까.

조력자는 저자가 ‘보이지 않는 전파자’라고 명명한, 막강한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인물이나 단체다. 2012년 우간다 반란군 지도자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송 6일 만에 유튜브에서 1억건 넘게 재생된 적이 있는데, 이 영상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게 아니었다.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나 저스틴 비버 같은 ‘전파자’가 트위터에 영상을 공유한 게 결정적이었다.

얼마간 사족처럼 여겨지는 내용도 적지 않다. 팝음악의 역사를 일별하거나 언론 생태계의 변화를 전하는 내용이 대표적인데, 이런 대목이 외려 가독성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을 번역한 이은주씨는 ‘옮긴이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저널리스트를 폄훼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사실 이들은 깊이보다는 넓이로 승부하는 직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깊이와 넓이를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저널리스트였다.” 그의 평가처럼 ‘히트 메이커스’는 전문성에 대중성까지 겸비한, 정교하면서도 간결한 메시지가 담긴 금주의 책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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