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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팔려고 거액 뇌물 준 ‘유럽의 날개’ 에어버스



‘유럽의 날개’이자 세계 2위 항공기 제조업체인 에어버스를 겨냥한 부패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유럽대륙이 발칵 뒤집혔다. 전투기, 여객용 제트기 등의 판매를 위해 각국 정부 고위 관료와 군 장성에게 뇌물을 먹인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뇌물로 쓰일 자금 운용을 위해 곳곳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까지 설립한 정황도 포착됐다. 현지에서는 이번 스캔들이 자칫 회사 지분을 대거 소유한 독일과 프랑스 정부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9일(현지시간) 발간된 최신호에서 프랑스 온라인매체 메디아파르트와 공동입수한 독일 검찰 내부문서 내용을 보도했다. 문서에 따르면 에어버스 고위 임원들은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오스트리아 도입 사업과 여객용 제트기 사업 등에서 정책 결정권자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뇌물로 쓸 자금 관리를 위해 세계 각지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자금을 융통시킨 혐의도 추가로 드러났다. 독일 검찰은 곧 에어버스 임원 다수에 법적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관련 수사는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수사의 발단이 된 건 오스트리아의 유로파이터 도입 사업이었다. 독일 검찰은 오스트리아가 2003년 에어버스(당시 EADS) 전투기 유로파이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고위 관료와 장성에게 뇌물을 줬다고 결론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파이터는 2012년 이명박정부가 추진한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록히드마틴의 F35A와 경합을 벌인 기종이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혐의는 계속 늘고 있다. 슈피겔에 따르면 에어버스가 받고 있는 뇌물 관련 혐의는 100건을 넘는다. 카자흐스탄 관료에게 1200만 유로(161억원)을 준 혐의도 포함됐다. 여기에 뇌물용 자금 관리를 위해 설립한 영국의 ‘벡터(Vector)’를 비롯해 버진아일랜드, 홍콩, 싱가포르 등 세계 각지에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뇌물 자금을 페이퍼컴퍼니로 관리해 에어버스의 자산으로부터 분리하려 했다는 것이다.

일이 커지자 에어버스는 ‘대청소’에 나섰다. 지난 5월 에어버스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임원 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톰 앤더스 최고경영자(CEO)는 “부패에 연루된 사람은 회사에서 내쫓기 전에 알아서 떠나라”고 압박했다. 앤더스는 지난해 부패의 중심으로 지목된 프랑스 파리의 영업부문을 해체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이 같은 조치도 ‘꼬리 자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독일 검찰이 확보한 일부 증거는 앤더스가 이미 페이퍼컴퍼니의 존재와 목적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을 뒷받침해준다.

이번 스캔들은 외교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보잉사 등에 대항하기 위해 1970년 설립된 에어버스는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설립 컨소시엄에 공동 참여해 각각 지분 11.1%씩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 주도의 수사로 프랑스 쪽 인사나 영업소가 타격받을 경우 프랑스 정부가 반발할 수도 있다. 또 에어버스가 직원 13만4000명에 연매출 약 670억 유로(90조원) 규모의 공룡기업인만큼 거액의 과징금으로 경영이 어려워질 경우 직원들과 시장에 미칠 파장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2007년 독일 기업 지멘스의 부패 스캔들에 필적하는 규모로 추정된다. 당시 지멘스는 1000건이 넘는 부패 혐의로 20억 달러(2조2700억원)의 벌금을 냈다.

글=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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