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엔터스포츠] ‘감독’ 현주엽 “매직히포요? 이젠 나 아닌 선수들 빛내야죠”

창원 LG 세이커스의 현주엽 감독이 지난달 21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 실내체육관에서 농구공을 끌어안은 채 미소짓고 있다. 사령탑 데뷔 첫 시즌을 맞은 현 감독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끈끈한 농구로 6강 이상의 성적을 내겠다고 다짐했다.이천=박구인 기자
 
현주엽 감독(왼쪽 두 번째)이 지난 4월 24일 서울 잠실구장에 위치한 창원 LG 세이커스 구단 사무실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선수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LG 주장 조성민, 현 감독, 김종규, 기승호. KBL 제공
 
현 감독(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달 21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 실내체육관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모습.KBL 제공


지난달 21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 실내체육관. 2017-2018 프로농구(KBL) 개막을 앞둔 창원 LG 세이커스 선수들이 팀 전술 훈련을 소화하며 구슬땀을 쏟고 있었다. 새 시즌 LG 지휘봉을 잡은 현주엽(42) 감독이 얼마 지나지 않아 코트에 나타났다. 선수들의 기합소리는 커지고 몸놀림은 더 빨라졌다. 현 감독은 훈련 내내 코트 곳곳을 돌며 선수들을 지도하고 직접 몸 상태를 점검했다. 솥뚜껑 같은 손으로 볼펜을 쥔 그가 자그마한 수첩에 훈련 내용을 빼곡히 기록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현 감독은 현역시절 최고의 스타 중 한 명 이었다. 탁월한 득점력은 기본이고 덩크슛으로 백보드를 박살낼 정도로 가공할 만한 파워까지 겸비했다. 탄탄한 체격에 패싱 센스와 시야가 뛰어나 ‘매직 히포’란 별명을 얻었다.

지난 4월 현 감독은 LG의 7대 사령탑에 선임됐다. 2009년 은퇴한 뒤 해설위원과 방송 출연 등의 활동을 해왔지만 농구 지도자 경험은 없어서 파격적인 행보라는 평가가 많았다. 게다가 현 감독은 부임 직후 선배인 김영만, 박재헌을 자신의 지시를 받는 코치진으로 꾸려 농구계를 놀라게 했다.

초보 사령탑이 겪는 고충은 현 감독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 감독은 “선수 때는 제 플레이만 신경을 쓰면 됐다. 지금은 팀 전체는 물론이고 경기 외적으로도 고민거리가 많아 힘들다”며 “그래도 든든한 코치들의 도움을 받아 시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현 감독은 화려한 개인기보단 조직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한 ‘끈끈한 농구’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부임 이후 팀 체질 개선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진행했다. 비시즌 동안 농구계에는 LG가 소위 ‘지옥훈련’을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현 감독은 “프로에 와서 체중이 늘었다는 몇몇 선수들에게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게 와전됐다. 우리가 절대 운동량이 많은 게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다만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선수들이 화려함을 쫓기보단 농구로 성공해보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는 지난 시즌 정규리그 8위에 머물러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다. 주전과 벤치멤버 간 기량 차가 있기에 데뷔 5년차 이내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누군가는 궂은일을 해줘야 하고, 단 1분의 출전기회가 주어져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게 현 감독의 설명이다.

현 감독이 팀을 맡으면서 내세운 원칙 중 하나가 공사 구분이다. 코트 밖에서는 선수들과 형 동생처럼 농담을 주고받다가도 코트 안에서는 진지한 훈련을 위해 채찍질을 많이 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날 코트 위 현 감독의 모습은 꽤나 살벌했다. 주문했던 플레이가 나오지 않자 선수들에게 거침없이 레이저 눈빛을 쏘았고, 때로는 호통도 쳤다. 국가대표라고 봐주는 것도 없었다. 호통 칠 때 국가대표 센터인 김종규의 이름이 가장 많이 불렸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그만큼 김종규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 감독은 “LG가 치고 올라가려면 김종규가 조금 더 성장해줘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김종규는 신장(207㎝)과 운동능력을 겸비한 선수다. 충분히 위협적인 선수가 될 수 있는데 아직은 부족한 점이 눈에 보인다”며 “종규가 조금 더 잘해주면 LG의 기둥을 넘어 한국 농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프로농구에는 선수시절 현 감독과 ‘농구대잔치 세대’로 불리며 동고동락한 감독들이 많다. 가끔 현 감독은 서울 삼성 이상민 감독, 전주 KCC 추승균 감독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조언을 구한다. 현 감독은 “두 감독 모두 정규리그 꼴찌(10위)를 경험해봤다. 사령탑 데뷔 3, 4년차를 맞은 두 감독의 충고가 피와 살이 된다”고 했다.

한 가지 에피소드도 전했다. 2014년 12월 삼성 선수가 경기 중 코트 밖에 서 있는 이 감독에게 패스를 한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현 감독은 방송해설위원이었다. 현 감독은 경기 후 “이 감독의 표정이 너무 어이없어 하길래 자신의 선수시절을 생각하지 말고 눈높이를 낮추라”고 위로했다. 이번에는 사령탑 걸음마를 시작한 현 감독이 최근 조언을 구하고자 이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 감독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선수시절을 생각하지 말고 눈높이를 낮추라”고 똑같은 말을 되돌려줬다고 한다. 현 감독은 “한방 먹었죠”라며 껄껄 웃었다.

현 감독은 데뷔 첫해 ‘봄 농구’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꼴찌는 하고 싶지 않다”며 “6강 플레이오프에 가면 조금이나마 우승 가능성이 있다. 그 안에는 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현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노력하고 고생한 만큼 만족할 만한 성적을 얻었으면 좋겠다”며 “달라질 LG의 모습을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저도 본업인 농구로 돌아왔으니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천=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사진=박구인 기자,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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