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의 아이돌 열전]하이라이트,‘3중 악재’에도 얼굴 찌푸리지 않고 재기


 
보이그룹 하이라이트가 오는 16일 데뷔 8주년을 맞아 발매하는 올해 두 번째 앨범 ‘Celebrate’의 표지. 왼쪽부터 손동운 양요섭 윤두준 용준형 이기광. 어라운드어스 제공


반짝이는 별은 수없이 많지만, 선을 그어야 별자리가 된다. K팝의 현재를 대표하는 아이돌들의 행보를 정리해본다. 이들이 K팝의 역사 속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또한 지금 어떤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보이그룹 ‘비스트’는 지난해 아이돌로서 매우 특이한 일을 세 가지 겪었다. 한 가지는 팬들이 특정 멤버의 탈퇴를 요구하고 나선 사건이었다. 불성실한 태도로 팬들을 실망시켰다고는 하지만 멤버 변동에 극도로 민감한 아이돌 팬의 세계에서는 무척 이례적이었다. 이어서 팀은 소속사 ‘큐브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종료하고 독자적인 기획사 ‘어라운드어스’를 설립했다. 그리곤 새 팀명으로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다. 소속사를 떠나 독립하는 것도, 브랜드 가치의 핵심인 이름을 바꾸는 것도 웬만한 아이돌은 견뎌내기 힘들 일이었다. 오는 16일 데뷔 8주년을 맞아 기념앨범 ‘Celebrate’를 발매하는 보이그룹 ‘하이라이트’의 시작이었다.

비스트는 2009년 손동운 양요섭 용준형 윤두준 이기광 장현승으로 구성돼 데뷔했다. K팝이 질적으로 급성장하며 세계 시장의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잡던 시기였다. 빅뱅의 지드래곤이 솔로 데뷔음반 ‘Heartbreaker’를, 브라운아이드걸스가 ‘Abracadabra’를 발표했다. 그야말로 K팝의 격변기였다. 돌이켜 보면 그 속에서 초기의 비스트는 K팝의 전형 같은 요소도 많았다. 이름과는 달리 소위 ‘짐승돌’의 과감한 육체미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스트리트 힙합 스타일로 ‘잘 나가는 남자들’의 느낌을 낸 것이 보이그룹의 정석에 가까웠다. 각기 개성이 뚜렷한 외모, 딱히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행보, 칼군무 등 역시 그랬다. 멤버 각각이 예능이나 드라마 출연, 솔로 음반 등으로 개인 활동을 활발히 한 것도 요즘 드물어지고 있는 당대의 풍경이었다.

데뷔곡 ‘Bad Girl’을 시작으로 초기 곡들은 프로듀서 ‘신사동호랭이’가 주축이 됐다. 대체로 비스트의 곡들은 어둡고 무거운데, 가요적인 향취의 멜로디가 결합해 친숙함을 더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서정적 멜로디와 속도감 있는 사운드가 결합한 ‘Fiction’이나 자극적인 기호와 결합하며 내달리는 ‘Shock’ 등은 트렌디한 사운드를 가요적으로 잘 소화해낸 대표적 예다. 조금 거칠고도 낙천적인 기운이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아름다운 밤이야’도 이 시기의 곡이다. 현재 프로듀서로서 잘 알려진 멤버 용준형도 초기부터 점차 작곡의 지분을 늘려갔다. 그가 참여한 2010년 ‘숨’은 날카로운 질감의 베이스가 저역에서 날뛰며 비스트의 에너제틱한 모습을 부각했다.

그러나 비스트를 빅뱅의 아류로 폄하하는 시선도 없지 않았다. 특히 보기에 따라 용준형의 이미지가 지드래곤과 비슷하게 느껴진다거나, 힙합에 기반한 작곡을 한다는 점 등이 그 이유로 꼽혔다. 실제로 지드래곤이나 빅뱅이 비스트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 오랫동안 아이돌이 없던 시장에서 2006년 데뷔한 빅뱅은 당대 보이그룹의 전범을 제공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빅뱅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보이그룹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좋겠다.

어쩌면 그런 평판도 자양분이 되었을까. 용준형은 프로듀서 김태주와 파트너를 이뤄 꾸준히 양질의 곡을 만들어내면서 비스트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일궈나갔다. 2013년 앨범 ‘Hard to love, How to love’은 이 콤비의 협업이 매우 성공적임을 입증해냈다. 특유의 어둡고 물기 많은 질감이 설득력 있게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비스트 스타일’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듯 모를 듯했다면, 2014년은 그 대답을 내놓은 해였다. ‘Good Luck’은 헤어진 연인을 떠나보내는 내용이 화려하고 다국적으로 연출된 뮤직비디오 공간 속에 펼쳐졌다. ‘12시30분’은 상대에게 닿을 수 없는 애절함을 시곗바늘에 비유했다. 두 곡 모두 안정적이고 단단한 음악 속에 드라마틱한 서사를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서글프고 비장한 감정을 절절하게 담았다. 가요적이었다. 비스트의 강점은 트렌디한 사운드에 가요를 설득력 있게 조립해 뜨거운 과장으로 담아내는 데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가요를 덜어냄으로써 세련을 꾀하는 것이 당대 K팝의 이상이었다면, 비스트는 자신들의 색채를 명확히 하려는 탐구 속에서 역발상을 이뤄냈다. 그것이 지난해 고난을 넘어서게 한 힘이었다.

흔치 않은 장수 아이돌의 반열에 들어선 하이라이트는 그중에서도 유별한 자리를 점할 것이다. K팝의 공식이 아직 불분명하던 시기에 데뷔해 셀프 프로듀싱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경지를 구축해 낸 과정 때문이다. ‘지금이 우리의 하이라이트’라는 팀 이름의 의미도 먼 미래나 거창한 목표보다는 당장을 기쁘게 즐기려는 듯 보인다. 그야말로 한없이 인간적인 모습이다. 하이라이트는 악재 이후 처절하거나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보다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한껏 떠들썩하게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라며 돌아왔다. 팬들이 그런 그들을 각별히 반가워한 것도 하이라이트의 존재가 너무나 인간적인 드라마이기 때문은 아닐까?<대중음악평론가·작곡가>

필자 미묘(문용민)는...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8대학 음악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부터 아이돌 전문 웹진 ‘아이돌로지’를 창간해 편집장을 맡고 있다. 다수의 매체에 대중음악평론가로 글을 썼고 영화음악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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