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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 자선도 세대차… 밀레니얼 세대, 기부보다 착한 투자

전 세계 젊은 슈퍼리치 125명이 가입한 단체 ‘더 임팩트’의 주요 멤버들. 앞줄 가운데 여성 최고경영자(CEO) 에비게일 노블 바로 뒤에 현대가 3세 정경선 HG이니셔티브 대표가 서 있다. 더 임팩트 제공




큰 부자(슈퍼리치)들이 좋은 일에 돈을 쓰는 방식에는 세대 차이가 있다. 부모 세대는 전통적인 자선·기부를 선호하고 자식 세대는 선한 사업에 투자하는 방식을 더 좋아한다. 부모 세대의 대표적인 기부 클럽이 ‘더 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라면, 자선과 투자의 절충을 지향하는 자식 세대의 대표 단체는 ‘더 임팩트(The ImPact)’다.

부모는 기빙, 자식은 임팩트 추구

더 기빙플레지는 2010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키로 약속하면서 만든 세계 부호들의 기부 클럽이다. 생전이나 사후에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면 회원이 될 수 있다. 현재 21개국에서 168명의 슈퍼리치가 동참하고 있다.

더 임팩트는 2015년 미국 석유재벌 록펠러 가문의 후손 저스틴 록펠러(38)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단체다. 전 세계 슈퍼리치 중에서도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 위주로 125명이 가입해 있다. 하얏트호텔 상속녀 리셀 시먼스,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후손 제이슨 포드, 미 의료장비 재벌 제임스 소렌슨의 아들 짐 소렌슨 등이 핵심 멤버다.

더 기빙플레지에는 아직 한국인 회원이 없지만 더 임팩트에는 있다. 정경선(31) HG이니셔티브 대표가 공동설립자로 참여하고 있다. 정 대표는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아들이면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손자다. 그는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 임팩트’를 통해 서울 성수동에 소셜벤처(기업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벤처) 입주공간을 조성, 운영하고 있다.

더 기빙플레지와 더 임팩트는 세계 부자들이 법적 구속력 없는 약속으로 참여한다는 기본 구조는 같다. 하지만 더 기빙플레지는 기부 약속, 더 임팩트는 투자 약속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더 임팩트의 투자 방식은 단체 이름과 같은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다. 재무적 수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환경적으로 측정 가능한 긍정적인 영향도 창출하는 자본 투자를 뜻한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투자해서 수익도 내는, 자선과 투자의 절충형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에 사는 더 임팩트 회원 파올로 프레시아는 특권을 가진 자로서의 책임을 이야기했다. 그는 “부(富)를 3대에 걸쳐 물려받은 건 엄청난 특권”이라며 “기후 변화, 소득 불평등, 인권 개선 등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과 씨름하는 일에 자본을 투자하는 데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했다.

더 임팩트 회원들이 그동안 얼마를 어디에 투자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고 CNN머니가 전했다. 다만 더 임팩트는 회원들 평균 재산이 7억 달러(7970억원)이며, 각 회원의 투자에 따른 성과와 사회적 영향을 측정하고 그 정보를 네트워크로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임팩트 최고경영자(CEO) 에비게일 노블은 “회원들은 서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비교해보고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익과 수익 ‘두 마리 토끼’ 잡기

뱅크오브아메리카 계열 자산관리회사 US트러스트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젊은 슈퍼리치가 임팩트 투자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US트러스트는 투자가능 자산이 300만 달러(34억원) 이상인 미국의 부자 8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다. 이들을 사일런트 세대(1925∼45년 출생), 베이비부머(46∼64년생), X세대(65∼70년대 후반), 밀레니얼 세대로 구분했다.

조사 결과 베이비부머와 사일런트 세대 슈퍼리치는 기부를 선호하는 비율이 80%에 달했지만 밀레니얼은 36%에 그쳤다. 반면 공익에 기여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 즉 임팩트 투자를 선호하는 비율은 밀레니얼 부자가 32%로 가장 높았다. 베이비부머와 사일런트 세대는 14%에 불과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선호도 역시 밀레니얼이 압도적으로 높고 나이든 세대로 올라갈수록 낮아졌다.

미 통신서비스기업 AOL을 창업한 스티브 케이스의 부인이자 더 임팩트 공동설립자인 진 케이스는 “부자 가문의 젊은이들은 단순히 수익만 노리는 옛날 방식을 거부하고 개인자본이 공익을 위해 사용되는, 이전과 다른 방식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글=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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