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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준동] 종묘∼창경궁, 88년 만의 재회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뒤 제일 먼저 지은 건물은 종묘다. 개국공신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임금은 하늘의 명을 받아 나라를 열면 반드시 종묘를 세운 다음 조상을 받드는 법”이라고 했다. 그만큼 종묘를 중요시했다는 얘기다. 1394년 10월 공사가 시작돼 이듬해 완공됐다. 12월 착공된 경복궁보다 2개월 빠르다. 완공 시기는 9월 29일로 같다. 종묘는 1995년 우리나라 유산 중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가장 먼저 등록됐다. 제2의 궁궐로 지어졌으나 후기에는 정궁의 역할을 했던 창덕궁은 1404년 태종 때 지어졌다. 조선의 5대 궁궐 중 가장 아름다운 궁궐로 9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옛 수강궁 터에 지어진 창경궁은 성종 때인 1484년 건립됐다. 창덕궁과 후원, 창경궁, 종묘는 하나로 연결돼 동궐(東闕)이라 불렸다. 경복궁 동쪽에 있는 궁궐이라는 뜻이다.

동궐은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중 창경궁은 가장 큰 치욕을 당한 비극의 궁궐이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황제로 앉혔다. 그 후 순종은 아버지와 떨어진 채 창덕궁에 기거했다. 일제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고 안에 벚꽃을 수천 그루 심어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1931년에는 서로 연결돼 있던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 사이에 율곡로를 놓아 서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허물어졌던 종묘∼창경궁 사이 담장이 제 모습을 되찾는다. 서울시는 2019년까지 종묘와 창경궁 사이 담장을 복원하고 담장을 따라 걸을 수 있는 320m 길이 보행로를 만들 계획이다. 율곡로를 4차로에서 6차로로 넓혀 지하화하고 터널 위는 흙으로 덮어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다는 복안이다. 비극의 역사를 뒤로하고 88년 만에 다시 만나는 그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김준동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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