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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의 조건… 與 “무조건 반대 말아야” vs 野 “진정성을 보여야”





추석 연휴가 끝나면 문재인정부 들어 첫 정기국회가 본격화된다. 올해 정기국회는 429조원의 내년 예산은 물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소득세법 개정안 등 각종 개혁 법안들을 처리해야 한다. 초유의 안보위기에 대처하는 국회의 입법과 예산 처리도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현재 국회는 1여3야의 여소야대 정국이다. 어떤 당도 혼자만의 힘으로 예산과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결국 여야는 협치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보는 국회는 대화와 타협의 장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굴복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끊임없는 이전투구의 장이다. 국민일보는 여야 전·현직 지도부 10명에게 협치의 구체적인 조건들을 물었다.

여당은 야당에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닌 구체적인 요구”를 주문했고, 야당은 여당에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를 요청했다. 여야 전·현직 지도부가 밝힌 협치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여소야대 현실은 인정해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협치를 위해선 “상대가 하고 싶은 것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당이 법안이나 예산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잘 수렴하는 것이 우선 협치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협치의 목표는 결국 정치가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자는 것”이라며 “상대가 방점을 찍어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이해심을 갖고 들어주고, 같이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원혜영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협치의 조건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타협하지 않으면 국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 전 원내대표는 “여당이 여소야대 현실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며 “야당 역시 무조건 반대하고 보자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고 했다. 정부를 향해선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만큼 적폐청산과 헌법정신 수호 차원에서 관철시킬 것과 타협할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완주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협치는 거래가 아니라 좋은 일을 함께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옳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서로 요구하는 걸 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다만 야당의 무조건적 반대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같은 쟁점 법안이라도 ‘이 조항은 보완을 하자’는 식으로 안을 내야지, ‘무조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은 안 돼’라는 식이면 논의 자체가 어렵다”고 비판했다.

협치는 ‘7대 3’의 원칙

여야 모두 100%의 결과를 내겠다는 태도는 곤란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원 전 원내대표는 “여당 입장에서 원래의 안에서 70% 정도로 통과시킬 수 있다면 나머지는 조정할 생각을 가져야 하고, 야당 역시 상식적 수준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재일 전 민주당 정책위의장 역시 “연정이든 협치든 정책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가 주장하는 게 A이고, 상대방이 주장하는 게 B라면, 승리한 우리가 A의 70% 선에서 합의하면 B를 주장한 측도 졌지만 협력할 용의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정책적 협조를 통해 점진적 변화를 함께하는 것이 곧 협치라는 의미다. 정성호 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협치는 결국 정권을 가진 여당이 주요 인사·예산·법안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야당 주장을 진정성 있게 경청·수용하려는 자세에서 온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양보할 수 없는 쟁점은 없다. 양보 없이 국민에 호소해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이 야당에 제안할 수 있는 협치의 첫걸음으로는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방송통신위원 등 추천권을 야당에 양보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원 전 원내대표 역시 “야당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파트너로 여기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협치가 실종됐다는 보수 야당

보수 야당의 원내 지도부들은 “문재인정부 등장 이후 협치는 실종됐다”고 비판하며 책임을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돌렸다. 특히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이명박·박근혜정부 당시 일들을 후벼 파는데, 어떻게 협치가 가능하겠느냐”는 반문들이 나왔다. 보수 야당 지도부는 다만 “문 대통령이 협치에 대해 변화된 자세를 보일 경우 적극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라고 하면서도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4당 체제라는 정치 현실을 인정하고 야당 의견에 귀를 기울일 때 협치가 가능하다”며 “하지만 지금 문 대통령은 야당을 논의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김태흠 한국당 최고위원은 “문재인정부는 협치는커녕 적폐를 자의적으로 단정하면서 정치보복으로 비치는 행동들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협치의 전제조건은 진정성”이라며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을 만날 때도 최소한 제1야당(한국당)과 제2야당(국민의당)은 따로 부르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치 이슈도 선별적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 최고위원은 “북핵 위기 상황에서 외교안보 이슈에서는 한목소리가 나와야 하고 경제·사회 이슈 등 우파와 좌파가 인식 차가 있는 영역에서는 대화와 타협으로 시각차를 좁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이 야당의 도움이 필요할 때만 협치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협치는 여당이 양보하고 야당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며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현실과 국회선진화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선 더더욱 정부·여당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도려내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한다”며 “협치도 깨고, 과거에 사로잡혀 싸우며 미래를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어 “정기국회에서 여권이 정말로 개혁 내용을 담은 개혁 법안을 제시하면 협조하겠다”면서도 “이름만 개혁 법안이라고 붙여 놓고 내용도 정교하지 못하고 효과도 없는 법률을 밀어붙이면 협조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당의 인식 전환이 우선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여당이 진정성을 갖고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면서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는 인식과 태도 전환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재원 대책 등 중장기 계획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는 ‘청와대발(發) 정책리스트’는 숫자에 관계없이 저지할 것”이라고도 했다.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 사례로는 탈원전 정책, 공무원 증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등을 꼽았다. 정부의 공수처 신설 권고안에 대해선 대통령의 공수처장 임명권을 문제 삼으며 까다로운 법안 심사를 예고했다. 그는 “여당의 일방통행을 막기 위해선 다른 야당과 뜻을 함께하겠다”며 “제1야당의 극단적 행보와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도 철저히 비판할 것”이라고 했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는 “여당이 야당과의 소통을 통해 여야의 조정안을 만드는 데 힘을 더 쏟아야 한다”고 협치의 조건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여당이 야당과의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한다면 국민의당이 과감하게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는 “협치는 여당이 연정 또는 여야의 개혁벨트를 구축하는 데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과의 굳건한 협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글=하윤해 김경택 정건희 기자 justice@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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