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삶] 코스모스

만개한 코스모스


연일 한반도의 위태로운 정세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뒤숭숭한 마음을 달랠 겸 때마침 강의가 없는 날이라 서두를 필요 없어 평소와는 다른 한갓진 코스를 택해 출근했다. 민가 근처 자드락길에 핀 코스모스에 눈길을 빼앗겨 차를 세웠다. 가을꽃의 대명사답게 햇살을 받은 코스모스가 눈부시다. 어딜 가나 길가에 흔하게 피는 코스모스는 꽃말인 ‘소녀의 순정’만큼이나 청초하고 많은 사람에게 추억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맘때는 지역마다 코스모스 축제도 한창이다. 당진에서 예산으로 가는 예당평야 일대와 전북 호남평야 지방도로는 내가 본 최고의 코스모스 길이다. 황금 들판과 눈부신 코발트색 하늘을 배경으로 하양, 연분홍, 자줏빛이 뒤섞인 색깔은 그 어떤 꽃 축제와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다. 코스모스는 초록 줄기와 가녀린 잎새 위에 원색 꽃이 무더기로 핀다. 자연이 빚어내는 원색은 아무리 선명한 색일지라도 촌스럽지 않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코스모스는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을 거쳐 1920년 무렵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종이다. 식물 역사로 보자면 짧은 기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 온 국민이 사랑하는 꽃이 된 셈이다. 희랍어로 ‘질서’와 ‘장식’을 의미하는 코스모스(cosmos)는 현대에 와서 혼돈을 일컫는 카오스(chaos)와 대응해 ‘질서정연한 우주’라는 의미가 되었다. 본래 천지는 카오스인 혼돈 상태로 탄생했으나 나름의 질서로 움직인다는 천문학자들의 주장에 근거한 말이다. 꽃 이름치고는 참으로 거창하다. 꽃송이 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코스모스를 들여다보면서 이 세상이 평화로운 질서를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양, 분홍, 자주색이 서로 다투지 않듯이.

성기혁(경복대 교수·시각디자인과)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