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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우리가 얼굴 흰 자를 용서하게 하소서”

한 인디언이 대평원의 작은 연못에서 말의 목을 축이고 있다. 만물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고 여기는 인디언은 채집이나 사냥을 할 때 그 생명에게 양해를 구한 뒤 취했다. ⓒEdward Curtis·더숲 제공




‘사슴이 땅을 파는 달’ ‘도토리묵 해 먹는 달’ ‘소 먹일 풀 베는 달’….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9월에 붙인 별명이다. 다가오는 10월은 ‘큰 밤 따는 달’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는 달’ ‘산이 불타는 달’ 등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 땅 반대편에 사는 이들이 지은 이름인데도 낯설지 않다.

한 해를 열둘로 나눠 계절의 변화와 사람들이 하는 일을 달에 담았기 때문이다. 책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여겼던 인디언들이 2세기에 걸쳐 남긴 명연설 41편을 모은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시적인 그들의 연설은 문명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이기적인 우리 삶과 가치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현대인의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로 들린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자식들에게도 일어난다. 사람이 삶의 거미줄을 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 역시 한 올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그가 거미줄에 가한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생태적 세계관이 담겨있는 시애틀 추장의 연설이다.

그는 1854년 백인 관리가 인디언의 땅을 사겠다며 찾아왔을 때 이 연설을 했다. 시애틀 추장은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얼굴 흰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로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전 세계 환경운동가들이 인디언을 최초의 생태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짐작된다. 인디언들은 총칼을 앞세운 백인들에게 거의 강제로 삶의 터전을 내주고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밀려나야 했다. “얼굴 흰 자들이 가져온 그 물건들은 우리를 점점 나쁘게 물들이고 더 나약하고 물건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남자들은 총 없이 사냥하는 법을 잊고 여인들은 라이터 없이 불 피울 생각을 않는다.” 인디언 텐스콰타와는 백인들이 가져온 문명의 이기가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며 이렇게 개탄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대략 150만명의 인디언이 살았지만 유럽인들의 탄압 속에 1920년에는 인디언 수가 35만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언들은 백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저 높은 곳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우리의 가슴에 당신의 이름을 좋게 기억하게 하시고 모든 부족의 추장이 되어 주시고… 얼굴 흰 자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수많은 죄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가 잘못한 것도 더 이상 기억하지 마소서. 모든 악의 무리들을 우리로부터 멀리 내던지소서. 아멘.’

인디언 치누크부족의 주기도문이다. 책에 수록된 인디언의 도덕률을 살펴보면 어떻게 이들이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아침에 눈 뜨거나 저녁에 잠들기 전에 뭇 생명과 그대 안에 생명에 감사하라’ ‘독약을 피하듯 다른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인류 전체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 등.

그들은 모든 사람과 뭇 생명을 연결된 한 형제자매로 여겼던 것이다. 인디언들은 또 부(富)의 허구성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부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것이다. 사람답게 키우는 일. …부라는 것은 좋은 것이 못 된다. 우리는 그것을 저세상까지 갖고 갈 수도 없다. 우리는 부가 아니라 평화와 사랑을 원한다.”

이 책은 백인 문명에 저항한 목소리기도 하다. 미국 퀘이커교 지도자 윌리엄 펜은 인디언에 대해 “우아하고 열정적으로 그러나 장황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말로 진리를 이야기 한다”고 평했다. 펜의 말대로 인디언의 연설은 우리가 잃어버린 삶과 지혜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책은 15년에 걸친 집필과 자료 수집 기간을 거쳤다. 1993년 처음 발간된 후 개정을 거듭해 9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 됐다. 평생 인디언을 촬영한 에드워드 커티스(1868∼1952)의 사진 41컷이 장별로 수록돼 생동감을 준다. 도시 문명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 책은 이질감을 줄 수도 있지만 인디언이 부르는 대자연 송가이자 투쟁의 서사로 음미될 가치가 충분하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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