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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스페셜/월드] 카탈루냐, 스페인과 이혼할까… 스페인 내 분리독립 움직임 격화


 
지난 24일(현지시간) 스페인 카탈루냐 주도인 바르셀로나의 산하우메 광장에서 카탈루냐 독립기를 든 거인상이 군중 사이로 옮겨지고 있다. 스페인 검찰은 26일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가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강행할 경우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을 체포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AP뉴시스





10월 1일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스페인이 초긴장 상태다. 투표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중앙정부와 강행하려는 자치정부는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75년 프랑코 독재정권 종말 이래 스페인 민주주의에 최대 위기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충돌 격해지는 중앙-지방정부

스페인 중앙정부는 지난 19일 카탈루냐 자치정부에 대한 추가교부금 지급을 중단했다. 또 올해 중앙정부의 재정지출 감독권한을 공공 필수부문에 이어 모든 분야로 확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승인했다. 한마디로 카탈루냐의 돈줄을 틀어쥔 것이다. 스페인 경찰도 이날 바르셀로나 시내의 카탈루냐 자치정부를 압수수색하고 관료 14명을 전격 체포하는 한편 투표용지 1000만장을 압수했다.

주민투표 자체를 위헌이자 불복종 행위로 규정한 중앙정부가 헌법 제155조를 발동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제155조는 중앙정부가 불복종하는 지방정부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중앙정부는 24일 자치정부의 경찰 지휘권을 일부 박탈하는 한편 반발에 대비해 전국의 경찰을 카탈루냐에 속속 집결시키고 있다.

카탈루냐에서는 독립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것조차 막는 것은 지나치다는 불만이 거세다. 지난 7월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는 카탈루냐 문제로 인한 갈등을 풀기 위해선 주민투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다만 분리독립 찬반을 묻는 질문에는 반대가 49.4%로, 찬성(41.1%)보다 높게 나타났다.

앞서 2014년 11월 정부 승인 없이 치러진 독립 찬반투표에선 찬성이 81%였지만 투표율이 절반에 못 미쳤다. 하지만 최근 경찰력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독립 움직임을 막는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이번 투표율은 훨씬 더 높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분리주의자들은 ‘영구적인 시위’를 천명할 정도로 격앙된 상태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23일 주민투표 홈페이지를 새로 열어 투표 방법을 설명하는 등 중앙정부의 완력 행사에도 투표 강행 의지를 밝혔다. 투표 결과 찬성이 많이 나올 경우 48시간 내 독립을 선언하고 국경을 통제한다는 방침이다.

뿌리 깊은 독립 열망

카탈루냐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스페인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은 그 뿌리가 깊다. 스페인은 1469년 바르셀로나 중심의 아라곤 왕국 페르난도 왕자와 마드리드 중심의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이 결혼하면서 현재의 토대가 마련됐다. 하지만 아라곤이 카스티야에 사실상 합병된 데다 1714년 왕위계승 전쟁 때 펠리페 5세의 반대편에 섰다가 자치권을 뺏기고 말았다.

이후 카탈루냐에서는 수시로 분리주의 움직임이 있었고, 특히 민족주의 열풍이 거셌던 20세기 초부터 분리독립 운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1931년 스페인에선 왕정에 반대하고 공화정을 지지한 자유주의자들의 승리로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이때 바스크와 함께 공화정을 지지한 카탈루냐는 자치를 회복했다. 하지만 1938∼75년 프랑코 독재정권이 지역 문화를 탄압하면서 자치권을 또 뺏겼다. 프랑코 총통이 세상을 떠난 뒤 자치권을 회복했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은 한층 커지게 됐다.

그 열망을 한층 뜨겁게 만든 것은 최근 첨단산업과 관광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한 경제력 때문이다. 카탈루냐는 지난해 지역총생산이 2236억2900만 유로(약 301조6286억원)로 스페인 국내총생산 1조1138억5100만 유로의 20%를 차지한다. 스페인을 구성하는 17개 지방정부 중 1위다.

카탈루냐는 중앙정부의 세금 19%를 책임지고 있지만 정작 지원받는 예산은 9.5%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2012년 스페인의 금융위기 때 카탈루냐는 중앙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만 했다.

앞서 카탈루냐는 2005년 자치정부에 세수를 더 많이 배정하는 내용의 자치법 개정안을 자치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듬해 중앙정부 의회도 법안을 가결했지만 집권 국민당이 끝까지 반대하며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2010년 헌법재판소는 위헌 결정을 내렸다. 숙원인 자치권 확대 노력이 무산되자 카탈루냐 내에서 중앙정부가 자신들의 세금을 상대적으로 빈곤한 남부 지방에만 쓴다는 불만이 높아졌다. 자치정부는 독립하면 재정정책과 투자를 독자적으로 진행해 경제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루이스 데긴도스 스페인 경제장관은 최근 “독립 이후 카탈루냐 지역총생산이 25∼30% 급락하고 실업률은 갑절로 치솟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립 즉시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에 속하지 않게 돼 무역 관세가 붙으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자 자치정부는 “독립 즉시 유럽연합(EU)과 협상해 유로존에 남겠다”고 밝혔다. 다만 EU는 현재 중앙정부 편을 들어주고 있다.

찬반투표가 이뤄진다고 해도 결과의 효력을 두고 충돌이 불가피하다. 찬성표가 더 많이 나온다고 해도 실제로 독립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찬성표가 더 많이 나오면 정치적인 명분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중앙정부에 자치권을 더 많이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어쨌든 중앙정부든 자치정부든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갈등의 골이 치유하기 어려울 만큼 깊어졌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유럽에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지역이 많은 상황에서 카탈루냐의 독립 시도가 도미노처럼 다른 지역으로 번질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탈리아·벨기에·영국도 선거철마다 독립 문제로 시끌

유럽에는 카탈루냐 이외에도 분리독립을 꿈꾸는 지역이 적지 않다. 역사적으로 다른 뿌리를 가진 것과 함께 경제적 문제가 중요한 요인이다. 분리독립을 원하는 지역은 대부분 다른 지역보다 잘 사는 경우가 많다. 이들 지역에선 독립 주장을 당론으로 내건 정당의 인기가 높아서 선거철마다 독립 요구가 반복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카탈루냐 외에 바스크가 독립에 대한 열망이 크다. 바스크는 카탈루냐와 마찬가지로 1939∼75년 프랑코 독재정권 시절 자치권을 뺏기는 등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이후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단체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가 생겨 최근까지 무장독립투쟁을 벌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북부 2개 주가 불만이 많다.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롬바르디아주와 베네토주는 오는 10월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압도적으로 통과될 경우 세금 분담 등 예산 문제에 대한 교섭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벨기에에선 북부 플랑드르 지방이 남부 왈롱 지방과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플라망어(네덜란드어)를 쓰는 플랑드르는 분리독립을 원하고, 프랑스어를 쓰는 왈롱은 프랑스로 병합되기를 희망한다.

영국에서 스코틀랜드의 독립 문제는 늘 주요한 이슈다. 다만 2014년 1차 독립 주민투표가 부결된 뒤 최근에는 독립 여론이 약해진 상태다. 독립을 주장해온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최근 총선에서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이 끝날 때 주민투표 일정을 다시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 지중해의 섬 코르시카에서도 프랑스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바이에른주는 연방 세금에 대한 불만이 많다. 다만 바이에른주가 연방탈퇴 선언을 할 가능성은 아직은 희박하다.

1991년 몰도바에서 독립을 선언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자치공화국 정부를 꾸리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는 현재 100개가 넘는 나라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다만 세르비아는 물론이고 러시아와 중국이 독립을 인정하지 않아 유엔에는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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