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20세기’ 강인한 여성들의 빛나는 세상살이 [리뷰]

영화 ‘우리의 20세기’에서 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도로시아 줄리 제이미 애비 윌리엄(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원제는 ‘20세기 여인들(20th Century Women)’이지만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제목에 ‘우리’를 넣었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우리 모두는 삶을 처음 경험해 본다. 낯설고 어려운 건 당연한 일. 매일매일 주어지는 하루라는 시간 속에 설렘과 불안이 뒤엉켜있다. 마음처럼 살기란 쉽지 않다. 영화 ‘우리의 20세기’는 그런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삐걱대며 흘러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영화의 배경은 1979년 미국 산타바바라.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55세의 싱글맘 도로시아(아네트 베닝)는 사춘기에 접어든 늦둥이 아들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먼)가 점점 버겁다. “엉망인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뭔지” 제대로 가르칠 자신이 없다.

도로시아는 제이미의 오랜 친구 줄리(엘르 패닝)와 입주민인 포토그래퍼 애비(그레타 거윅)에게 도움을 청한다. “남자를 키우려면 남자가 필요하지 않느냐”며 또 다른 입주민 윌리엄(빌리 크루덥)에게 부탁해 보라는 줄리의 제안. 그러나 도로시아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만으로 충분하다”고 단칼에 자른다.

마이크 밀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우리의 20세기’는 페미니즘적인 주제의식을 뚜렷이 내비친다. 오르가즘에 대한 여성의 솔직한 생각이나 나이든 여성이 느끼는 성적 비애를 직접 언급한다. 애비가 제이미에게 페미니즘 서적을 추천하고, 여성 성기를 뜻하는 단어를 입에 담길 주저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영화는 여성주의에 국한하지 않고 폭넓은 시각으로 삶의 단상들을 비춘다. 이혼 이후 고독에 시달려 온 도로시아, 가정환경에 불만을 품고 약물과 성(性)에 눈을 뜬 줄리, 자궁 종양으로 불임 판정을 받은 애비, 아내가 떠난 뒤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윌리엄, 아버지의 부재로 방황하는 제이미. 저마다 결핍을 안고 살아가던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새 시대에 적응해간다.

제89회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작인 만큼 주옥같은 대사들이 쏟아진다. 특히 도로시아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삶의 지혜’들은 한번쯤 곱씹어볼 만하다. “실연도 세상을 배우는 좋은 방법이거든.” “행복한지 따지는 건 우울해지는 지름길이야.” “남자들은 여자들을 위해 뭔가 해결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해결 못하는 것도 있어. 그냥 옆에 있어줘.”

전작 ‘비기너스’(2011)에 이어 삶에 대한 섬세한 통찰을 보여준 밀스 감독은 “나를 기른 건 아주 강한 여성들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연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격동의 20세기를 살아낸 여성들에게 바치는 찬사이다. 결코 돌아가지 못할 순수의 시대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27일 개봉. 119분. 15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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