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트렌드 대전환, 서쪽 해돋이를 찾아서(2)



서울을 상징할 만한 한 대형쇼핑몰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곳은 유동인구가 무척 많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임대료는 그리 높지 않았다. 월세가 매출액과 연동돼 있었는데 입점주들이 매출신고를 낮게 한 탓이다. 그런데 점포마다 판매시점관리(POS) 단말기가 도입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단말기를 통해서 매출이 정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입점주들의 불성실 매출신고를 탓하자는 게 아니다. 이미 턱밑까지 파고든 데이터의 위력에 주목해보자는 얘기다. POS 단말기는 단지 해당 점포의 매출내역만을 알려줬지만 가령 모든 구매자의 구매성향이나 다른 쇼핑몰에서의 구매기록, 소득수준, 거주지 등 데이터는 무궁무진하다. 데이터가 한데 모이는 것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다.

바로 요즘 부쩍 거론되고 있는 빅데이터 이슈다. 변화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21일 국민일보가 개최한 2017 국민미래포럼에서 ‘트렌드 대전환, 서쪽 해돋이를 찾아서’를 주제로 삼아 전문가들과 더불어 현상을 점검하고 방향을 고민하게 된 배경이다.

한국에서 트렌드 대전환의 조짐은 이미 갖가지 모양새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일시적인 호기심에 머물렀을 따름이다. 예컨대 빅데이터만 해도 이미 2013년 국내에 소개됐고, 금융과 IT기술이 결합한 핀테크는 2년 전부터 작은 붐을 이뤘지만 본격적으로 확장되지는 못했다. 인공지능(AI)의 경우는 지난해 알파고의 등장으로 높은 관심을 끌었으나 산업측면에서 구체적인 진전이 있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이번 포럼의 기조강연을 맡았던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트렌드 대전환에 대응하자면 우선 정부부터 ‘칸막이 없는 정부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변화의 주체는 민간일지라도 정부가 트렌드 대전환기에 제대로 된 지원정책을 펴자면 정책의 통합관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칸막이 정부로는 혁신을 이룰 수 없다는 진단이다.

사실 선진 각국은 트렌드 대전환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한 20세기 말부터 정책통합에 적잖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특히 과학기술의 진보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만큼 경제 사회 일반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는 신과학기술 영역에 초점을 맞춰 미래진단 노력을 키워왔다. 일본의 경우도 ‘정책을 위한 과학’이라는 개념을 새로 도입한 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 내 상시적인 조직으로서 ‘선견(先見 Foresight)’이나 미래를 세밀히 살핀다는 뜻의 ‘Horizon Scanning(HS)’을 전담하는 부서의 등장이다. 영국 네덜란드 유럽연합(EU) 등은 이미 1990년대 이후 그와 같은 조직을 구축하고 구체적으로 활용해오고 있다. 이들 조직은 특정 과학기술에 대한 ‘정보수집→정보분석→액션플랜 모색 등’ 단계별로 치밀하게 대응한다.

HS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은 정부 부서 간 협력과 정보공유다. 김 부의장이 강조한 ‘칸막이 없는 정부’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각각의 공고한 칸막이를 제거하자면 지도자의 강력한 혁신 드라이브가 필수적이겠으나 그와 더불어 구성원 모두에게 발상의 전환도 전제돼야 한다. 바로 서쪽에서 해가 뜰 수도 있다는 ‘서쪽 해돋이’ 인식이다.

어쩌면 제도적인 혁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흔히 칸막이를 고수하려는 이유는 조직이기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이지만 그 본질은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데 있다. 부분을 지키려다 전부를 일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과학이 생활 깊숙이 밀고 들어오는 트렌드 대전환 앞에서 화석화된 낡은 틀부터 깨야만 하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를 이끌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높은 과학기술 수준과 응용능력은 필수일 테다. 하지만 핵심은 서쪽 해돋이를 찾겠다는 역발상에 있다고 본다. 그간 우리는 재빠르게 산업화를 이뤘노라고 늘 자부해왔지만 성공한 기억은 우리를 낡은 틀에 붙들어 놓을 뿐이다.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지나간 영광으로 새 세상을 건너갈 수는 없다.

우리는 그간 주어진 틀에 입각해 배운 대로 대답하는 것에만 능숙했을 뿐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질문에는 소극적이었다. 따라쟁이처럼 기존의 흐름만 쫓아왔고 그걸로 만족했다. 바로 그 때문에 지금 우리는 정치·경제·사회 모든 부문에서 결정적인 고비를 못 넘긴 채 정체감에 시달리고 있다. 당장 생각을 바꾸자. 미래를 열자.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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