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밝힌 ‘태평양상에서의 수소탄 시험’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의 정각(正角·30∼45도) 발사일 것으로 예상된다. 화성 14형에 모의 탄두를 달아 태평양상의 최대 사거리까지 보낸 뒤 기폭장치를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실제 수소탄을 태평양상에서 폭파시키는 상황도 예상해 볼 수는 있지만 정치적·군사적 부담이 지나치게 큰 행동이다.
핵탄두를 장착한 ICBM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북한이 올해 안에 또다시 고강도 도발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은 이미 많았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이 외무상이 연달아 위협적인 언사를 쏟아낸 것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총회 발언을 빌미로 추가 도발의 명분을 쌓는다는 측면이 있다.
실행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발은 화성 14형의 실제 사거리 발사다. 화성 14형이 한반도에서 6000∼7000㎞ 이상 떨어진 태평양 상공까지 날아가 대기권 재진입을 거친 뒤 탄두 기폭까지 성공한다면 ICBM 개발은 사실상 완료됐다고 주장할 수 있다. 화성 14형 대신 지난 8월에 밝힌 바 있는 화성 12형을 이용한 괌 포위사격을 시도할 수도 있다. ICBM급으로 추정되는 ‘화성 13형’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북극성 3형’ 등 신형 미사일이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 외무상이 말한 대로 화성 14형에 실제 수소탄을 달아 태평양에서 핵실험을 하거나 30㎞ 이상 고도에서 폭발시켜 전자기파(EMP) 공격 시험을 할 수도 있으나 북한이 쉽게 꺼내들 만한 카드는 아니다. 미국과 일본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도발이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북한이 지하 핵실험만 허용하는 국제관례를 위반하는 것도 모순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2일 “이 외무상의 ‘태평양상에서의 핵실험’ 발언은 김 위원장 발언의 폭발력을 극대화하는 블러핑일 것”이라면서 “북한이 실제로 실행하기에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추가 도발의 최대 고비는 다음달 10일 노동당 창건 72주년 기념일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4일 국회 국방위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북한이 이날을 전후해 ICBM을 시험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다만 북한은 극단적인 메시지를 내놓으면서도 일정 부분 물러설 여지도 함께 뒀다. 김 위원장은 성명에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면서도 “심중히(신중히) 고려할 것”이라는 말을 추가했다. ‘심중히’는 지난달 김낙겸 전략군 사령관이 괌 포위사격 방안을 밝힐 때도 쓴 말이다. 김 위원장은 “나는 트럼프가 우리의 어떤 정도의 반발까지 예상하고 그런 괴이한 말을 내뱉었을 것인가를 심고(고심)하고 있다”고도 했다. 강하게 위협은 하되, 미국의 태도를 지켜보며 ‘버튼’을 누를지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다시 보인 것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