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동훈] 메시아가 진노한 이유



한반도 안팎이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어수선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데뷔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전쟁 임박설까지 엄습해 있다. 이런 틈을 비집고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등 기독교 이단세력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지난 18일 신천지 유관단체인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이 화성종합경기타운 주경기장에서 만국회의를 열어 북핵 도발로 인한 전쟁 위험을 언급하며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법 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파주 임진각에 모인다고 가짜 홍보를 하기도 했다. 통일교가 통일이라는 모토와 그럴싸한 세계평화라는 단어로 위장해 세 불리기에 나선 행태와 비슷하다. 더욱이 북핵 문제가 최대 이슈로 다뤄질 것을 예상해 유엔총회를 앞두고 이슈 선점에 나섰다.

교계는 경기도 과천 등 수도권 지역뿐 아니라 강원도 원주를 비롯해 지방 곳곳이 신천지 세력으로 물들어가는 등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한다. 대학가에서는 동아리와 동아리 연합체를 생성하며 끊임없이 퍼져가고 있다. 특히 젊은이를 상대로 인터넷에서 좋은 이미지 심기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보다 이단 개념이 약한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한인 교회에 신천지가 급속히 침투해 열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 ㈜오대양 구내식당 천장에서 32구의 사체가 발견됐다. 20세기 말 이단 종교의 최대 비극인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이다. 올해로 꼭 30년이 됐다. 한 세대 전과 지금의 사회상이 오버랩되는 건 무슨 연유일까. 87년에는 군사정권으로부터 승리한 6월 시민항쟁 이후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과 억눌렸던 노동자의 경제적 욕구가 분출했다. 지금은 국정농단을 야기한 박근혜정부를 탄핵하기 위한 광화문 촛불시위의 승리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의 대국민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욕구불만은 극에 달해 있다는 점에서 30년 전과 닮았다. 청년실업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있고 기업들은 정부의 압박과 중국의 사드 보복, 미국의 무역보복 등으로 안팎곱사등이 신세다.

환절기 바이러스가 허약 체질을 주로 공격하듯 현재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면역력이 최저치로 떨어진 듯하다. 신천지가 독버섯처럼 번식하는 것도 한국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할 교회가 면역력이 떨어진 때문 아닐까. 이단의 공격에 맞설 만큼 단단한 교리로 교인을 철저히 무장시켰는지 의문이다. 항간에는 교인들이 성경말씀에 해박해지는 것을 우려해 설교 말고는 교리 교육에 관심을 두지 않는 목회자도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다른 목회자 설교를 인터넷에서 베껴 강대상에서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는데, 신천지 교리를 버텨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예수님이 딱 한번 크게 노하신 적이 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에 갔을 때였다. 예수님은 거기서 돈 바꾸는 사람들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을 꾸짖고 성전 밖으로 내쫓으셨다. 당시는 양과 염소를 제물로 바치는 유월절로 집이 멀어 여의치 않은 순례자를 상대로 한 환전업이나 희생동물을 파는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나 사두개인이 막대한 이권을 챙김으로써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을 참지 못했다. 예수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던 맹인과 다리 저는 자들(장애인)을 고치셨다. 장애인을 성전에 들인다는 것이 당시 유대교 교리로 무장한 바리새인과 제사장들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조치였다.

요즘 한국교회도 2000년 전 예루살렘 성전처럼 힘없는 이웃을 내치고 이권 개입, 권력 쟁취, 목회 세습, 교세 확장 등에 급급한 나머지 영적 맹인이 돼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신천지 아웃 운동에 앞서 시급한 것이 면역력 강화다. 우리 안에 스스로 쌓아놓은 이단과 우상을 척결해야 한다. 메시아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께서 새로 세운 성전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볼 시점이다.

이동훈 종교국 부국장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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