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뭔가에 아주 질려버리는 ‘학을 떼다’



“나를 막무가내로 쫓아다니던 걔 알지. 말 마. 아주 학을 뗐다, 학을….”

집착이 심한 이성의 일방적 대시로 마음고생이 심했나 봅니다. 그런데 왜 학을 뗐다고 할까요. ‘학을 떼다’는 괴롭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느라고 갖은 고생으로 진땀을 빼거나 그것에 거의 질려버린다는 말입니다. 넌더리가 나도록 지긋지긋하다는 뜻이겠습니다. ‘학’은 학질, 즉 말라리아입니다. 그러니까 ‘학을 뗐다’는 학질에 걸렸다가 겨우 나았다는 말로, 거의 죽었다 살아났을 만큼 큰 고생을 했다는 뜻이지요.

학질이 창궐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으로 미뤄 예전부터 학질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지요. 학질은 고열에 설사와 구토, 발작을 일으키면서 빈혈 증상을 보이는 법정 전염병으로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킵니다. 예방·치료법이 변변찮던 시절에는 속수무책으로 죽어갈 수밖에 없는 무서운 병이었던 것입니다.

病(병)자에서 丙을 빼면 질병과 관련된 글자를 만드는 부수 ‘녁’이 남지요. 丙 대신 虐(학)을 넣으면 ‘학질 학’, 寺(사)가 들어가면 ‘치질 치’, 皮(피)가 들앉으면 ‘피곤할 피’ 등이 됩니다.

못된 놈 엉덩이에 뿔난다더니 박멸(撲滅, 때려잡아 싹 없앰)해야 할 학질모기는 앉아서는 뒷다리와 몸 뒤쪽을 번쩍 들어올린다지요. 둔부(臀部)의 뿔처럼.

글=서완식 어문팀장,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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