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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커피는 혁명을 일으킨 사회적 토양이 됐다

테이블 위에 커피와 케이크가 놓여 있다. 근대 유럽에서 커피하우스는 토론과 투표의 장(場)이 됐고 비스킷은 대항해 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다.픽사베이 제공




뭐든 듣고 보면 더 재미있고, 알고 먹으면 더 맛있지 않던가. 역사학자가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음식 7가지에 얽힌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썼다. 고기 빵 포도주 치즈 홍차 커피 초콜릿의 유래에서 시작해 이 음식이 인류의 삶에 일으킨 변화와 야기한 다툼을 상세히 다룬다. 음식의 연대기를 넘어서는 재미가 알알이 박혀 있다.

근대 초 유럽 선원들은 아메리카와 아시아를 향해 몇 달씩 항해를 했다. 빵을 굽는 화덕을 실을 수 없는 노릇. 빵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빵을 두 번 굽기 시작했고 그렇게 탄생한 게 비스킷이다. 비스킷은 라틴어로 두 번 굽는다는 뜻이다. 일본은 이런 유럽을 배웠다. 전쟁을 위해 군인에게 밥 대신 빵을 먹이기로 하고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 조사단을 파견했다. 그렇게 해서 1905년 밀가루 쌀가루를 배합한 ‘고빵’을 개발했다. 이어 쌀가루 콩가루를 섞어 만든 빵을 내놨다. 현재까지도 군대 주요 간식으로 통하는 ‘건빵’이다. 저자는 “흔히 나침반과 조선술이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고 하지만 서양인들이 빵이 아니라 밥을 먹었다면 그런 항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빵 편에 나온 얘기다.

이 책은 이렇게 음식을 통해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커피 얘기는 구미를 더 당긴다. 유럽에서 커피하우스가 처음 생긴 곳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였지만 커피가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곳은 영국과 프랑스다. 1650년 런던에 커피하우스가 처음 생겼다. 당시엔 크롬웰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청교도주의를 강조했던 그는 경마 도박을 금지하고 술집을 강제로 폐쇄했다. 술집이 문을 닫자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였고 이곳에서 토론을 벌이며 청교도 혁명의 동력을 지켜갔다. 17세기 말 런던에만 3000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투표 상자를 처음 사용한 곳도 바로 커피하우스였다. 커피하우스가 토론과 투표의 장이 된 데는 커피의 카페인 성분이 가진 각성효과가 한몫했다.

프랑스의 경우 1789년 프랑스 혁명 직전에 파리에만 2000개의 카페가 있었다. 카페는 계몽사상과 사회변혁의 공론을 나누는 장이었다.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등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카페를 애용했다. 볼테르는 하루 12잔이나 마시는 커피 애호가였다. 이들은 카페에 모여 프랑스를 뒤집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했고 이런 인식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사회적 토양이 됐다. 유럽인들은 커피를 ‘이성의 음료’라 부르며 찬양했다. 이처럼 커피는 토론을 통해 시민의식을 고양시키면서 혁명에 일조한 음료였다.

인상적인 얘기가 많다. 유럽에 육식이 보편화되면서 15세기 이후 여성이 남성보다 많아졌고 여성의 평균수명도 남성보다 길어졌다. 물이 좋지 않은 유럽에서는 포도주나 맥주가 중요한 음료수 기능을 했다. 초콜릿은 치통 변비 이질 등에 효과가 있는 데다 강력한 정력제로 소개돼 인기를 누렸다. 음식에 관련된 이런 풍성한 에피소드와 유용한 정보가 책에서 손을 쉽게 놓지 못하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출근길 모닝커피, 점심 메뉴로 나온 제육볶음, 출출한 오후에 집어 든 비스킷이 더 맛있게 느껴질 게 분명하다. 흥미로운 음식 이야기가 뇌에 남아 전채(前菜)로 작용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다이어트 중인 분들은 가능한 이 책을 피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음식의 유래에 대한 일부 설명이 제국주의의 역사를 미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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