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엔터스포츠] ‘큰나무’같았던 아버지 아들은 그 너머를 꿈꾼다




올 시즌 ‘바람의 아들’ 이종범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아들인 이정후(넥센 히어로즈)가 1군 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야구를 가업으로 하는 2세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이종범-이정후 부자 외에도 송진우-송우현, 박종훈-박윤(이상 넥센), 김상국-김동엽(SK 와이번스), 이순철-이성곤, 박철우-박세혁(이상 두산 베어스), 유승안-유원상(LG 트윈스)·민상(kt 위즈) 부자 등이 잘 알려진 부자 야구인이다. kt 위즈의 외국인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도 아버지가 1990년대 미국프로야구(MLB)에서 활약했던 투수였다.

2세 선수들은 묵묵히 아버지를 넘어서 자신만의 야구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 또 ‘금수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그늘’에서 오는 부담감과 싸우며 여느 선수처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네 가지 키워드로 2세 선수들을 만나봤다.

부담감

2세 야구선수들은 ‘OOO의 아들’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야구계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갖는 부담감이 늘 따라 다닐 수밖에 없다. 또 야구계에서 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아들들은 더욱 조심하게 된다.

이정후는 “어렸을 때는 아버지와의 비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고교 2학년 때 ‘아버지는 아버지고, 난 나다’라고 생각을 고쳐먹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면서 “어렸을 때는 내 노력이 부각되지 않고 ‘아버지 덕을 본다’는 얘기를 들어 아쉬움도 들었다. 프로에 와서는 내 실력으로만 평가 받아서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박종훈 한화 단장의 아들 박윤은 “야구를 하면서 정말 몸가짐이나 예의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제 행동으로 아버지께도 누가 될까봐 걱정됐다”며 “그래도 아버지의 현역 때 모습이 동기부여도 되고 따라 가고 싶은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김상국 전 한화 포수의 아들 김동엽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는 “항상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다. 반대로 그렇기에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 또한 크다”고 밝혔다.

남다른 환경

야구선수의 아들이 갖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 야구를 일찍 접하거나 남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었다. 또 아버지는 야구선수인 아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주며 이해해줬다.

송진우 전 한화 코치의 아들 송우현은 “집에서 쉴 때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시려고 야구 얘기는 안 하셨다”며 “돌이켜보니 남들보다 야구장비 등에서도 항상 좋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철우 두산 코치의 아들 박세혁은 “좀 더 야구를 일찍 접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께서 야구인이라 힘들 때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래들이 접하기 어려운 각종 경험은 지금의 선수로 성장하는데 좋은 자산이 됐다. 박윤은 “아버지께서 현대 유니콘스 코치로 계시던 99년 초등학생 때 몸을 풀던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뛰었다. 생애 가장 즐거운 기억이었고 정민태, 이숭용, 전준호 등 레전드 선배들과 함께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일화를 끄집어냈다.

어릴 적 시카고 컵스의 강타자 새미 소사를 만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로하스는 “아버지 덕분에 MLB 야구장을 모두 구경할 수 있었고 클럽하우스에 들어가 선수들과 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과외

흔히 야구스타들의 아들은 특별한 과외비 없이 야구에 대한 고급 강의를 들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얻는다. 하지만 실제는 정반대라고 한다. 아버지들은 대부분 자식 교육은 직접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들을 가르치는 지도자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더욱 조심했다.

이정후는 “아버지랑은 야구는커녕 캐치볼도 하지 않았다. 야구를 가르쳐 주신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승안 경찰 야구단 감독의 아들 유민상은 “학창 시절엔 아버지가 저를 가르친 코칭스태프에게 부담이 될까봐 학교로 찾아온 적도 없었고 뭔가를 가르쳐 주시지도 않았다”며 “아주 어렸을 때만 일부 기술에 대해 가르쳐 준 것 같다”고 기억했다.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의 아들 이성곤도 “학교 다닐 동안에는 기술에 대한 조언은 전혀 듣지 못했고 저를 가르친 코칭스태프를 전적으로 믿으셨다”고 밝혔다.

감사와 효도

야구선수로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아들로서의 도리를 하고싶은 것은 2세들의 공통된 심정이었다.

이정후는 “아버지께서 제 플레이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힘도 주시는데도 표현을 못해왔다.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속에 담은 마음을 표현했다.

이성곤은 “아버지가 아니라 야구인으로서의 자세나 마음 등을 본받고 싶다. ‘항상 야구를 최우선으로 하고 즐기면서 해라’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박세혁은 “제가 야구를 더욱 잘 하는 것, 아버지보다 잘하는 게 효도라고 생각한다. ‘박철우의 아들 박세혁’보다 ‘박세혁의 아버지 박철우’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김성근·정준 부자의 특별한 동행
野神의 아들 “아버지 어려워 하루 세 마디만 했다”


“들어오셨습니까. 식사하셨습니까. 주무십시오”.

군대 후임병이 선임병에게 건네는 대화가 아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하는 말이다. 아버지는 ‘야신’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고 아들은 김정준 전 한화 코치다. 유년 시절 엄한 아버지가 어려웠던 김 전 코치는 하루에 김 전 감독에게 이 말 세 마디만 했다고 한다.

김 전 코치에게 김 전 감독은 단순한 아버지 이상으로 특별하다. 김 전 코치는 김 전 감독을 “하나는 아버지로, 다른 하나는 야구계 선배로, 또 다른 하나는 조직의 리더로 바라본다”고 밝혔다. 운명으로 엮어진 부자관계뿐 아니라 야구계 선배이자 함께 일한 팀의 감독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1992년 LG 트윈스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김 전 코치는 통산 5경기에 나서 타율 0.143(14타수 2안타)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1년 만에 방출됐다. 입단 당시 김 전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선수생활은 짧았지만 LG에서 전력분석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김 전 코치는 공을 줍고 장비를 챙기면서 밑바닥부터 열심히 했고, 야구계에서 인정도 받았다. 또 김 전 감독의 5번의 한국시리즈 진출(2002년 LG, 07·08·09·10년 SK)과 3번의 우승에 늘 함께했다는 자부심도 있다.

가장 감격적인 순간을 김 전 코치는 2008년 SK의 한국시리즈 우승 때로 회상한다. “전년도 처음으로 우승했을 때 당시 이만수 수석코치께서 구장을 찾은 아들과 포옹을 나눴는데 정말 부러웠다. 저는 아버지하고 악수 밖에 못해 너무 아쉬웠다”며 “2008년 두 번째 우승 때는 감독님과 진한 포옹을 했다”고 밝혔다.

김 전 감독이 한화를 떠나면서 김 전 코치도 팀을 나왔다. 김 전 코치는 “아버지께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서 정말 몸을 낮춰 왔는데 아버지와 연관되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김 전 코치는 올 시즌 김 전 감독이 감독직을 내려놓은 직후 “제가 이제 아들 노릇 하겠습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지난달엔 부자가 처음으로 단 둘이 여행을 떠났다. 일본으로 가서 한신 고시엔구장을 찾아 고시엔(일본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을 관전하고 전설적 야구선수 출신인 오 사다하루(王貞治)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을 만나 야구철학을 공유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오 회장은 ‘프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일맥상통했다고 한다. 꾸준함과 일관된 삶의 자세는 가장 본받고 싶은 아버지의 장점이다.

글=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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