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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에 현금 다발… 日 초고령사회의 그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11일 ‘인생 100년 시대 구상회의’를 열었다. 초(超)장수 사회 새로운 삶의 모델을 세계 최초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회의다. 하지만 야심찬 구상과 달리 지금 일본의 현실은 쓸쓸하기만 하다. 혼자 사는 노인이 현금 뭉칫돈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다른 가족에게 전하지 않은 채 숨을 거두는 바람에 그 현금이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 군마현 누마타시의 쓰레기 수집·운반 회사는 수거한 에너지 음료 박스에 4251만엔(4억3890만원)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령의 남성이 사망한 뒤 집을 철거했을 때 나온 쓰레기 중 하나였다. 노인이 현금 보관 사실을 가족 등에게 알리지 않고 숨졌기 때문에 거액의 뭉칫돈이 쓰레기가 돼버린 것이다.

NHK방송은 올해 들어 일본에서 이런 식으로 버려졌다가 발견된 현금이 8500만엔(8억7720만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이시카와현 가가시의 온천마을 쓰레기 집하장에선 쓰레기 분류작업을 하던 여성이 1만엔짜리 지폐 2000장이 담긴 찬합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노인이 상당한 액수의 현금을 집에 보관하다 가족에게 전하지 않고 숨지는 일은 일본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혼자 살던 노인이 숨졌을 때 자택의 유품을 가족 대신 정리해주는 업체 관계자는 “작업 중에 100만엔(1030만원)이 넘는 현금을 발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여전히 카드보다 현금을 선호하며, 노인 중에는 은행에 자주 가는 게 힘들어 한번에 100만엔 이상의 현금을 인출해놓는 경우가 많다. 인출한 현금은 도둑맞지 않으려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겨놓기 때문에 가족이 이를 미리 알고 있지 않거나 유품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쓰레기장에 처박힐 가능성이 있다.

돈을 금융기관에 맡기지 않고 집에 보관하는 ‘장롱예금’이 많은 것은 아베노믹스의 영향도 있다. 막대한 돈 풀기로 은행 금리가 형편없이 낮아지면서 예금의 유인이 적어진 것이다.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의 구마노 히데오 수석연구원은 “쓰레기로 발견되는 현금은 빙산의 일각이며 자기 주변에 현금을 두고 있는 사람은 훨씬 많다”면서 “경제활동에 사용돼야 할 돈이 경제주체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유통되지 못하는 모습은 일본 경제의 과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풀린 돈이 소비나 투자로 돌지 않고 장롱 속에 들어가 있다가 결국 쓰레기장으로 가는 현상은 비뚤어진 일본 경제를 드러낸다는 지적이다.

아베 총리는 회의에서 “인생 100년 시대를 향한 ‘사람 만들기 혁명’은 아베 내각의 최대 테마”라고 강조했다. 아베 정권은 그동안 저출산 고령화 대책과 관련해 ‘1억 총활약 사회’ ‘일하는 방식 개혁’ ‘사람 만들기 혁명’ 등 독특한 캐치프레이즈를 많이 만들어왔는데 아직 말잔치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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