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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위안부 아픔에 위로를… 보탬 됐다면 감사” [인터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또한 우리네 평범한 이웃이라 말하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9급 공무원 민재 역을 맡은 이제훈. 그는 "영화가 관객에게 희로애락을 전달할 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경험했다"고 말했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아이 캔 스피크’에서 민재가 옥분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장면. 리틀빅픽처스 제공




“현대인들이 참 살기 바쁘잖아요. 개인적인 일도 많고 내 가족도 챙겨야 할 테죠. 그럼에도 주변을 둘러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 캔 스피크’가 그런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께 위로가 되었으면 해요. 세대를 넘어 우리 모두가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배우 이제훈(33)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조심스럽게 한마디 한마디를 골라 사뭇 단단한 어조로 내뱉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보탬이 됐다는 것만으로 감사함을 느낀다고. 그리고 이 영화의 진심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오는 21일 개봉하는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는 20년간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꾸준히 구청에 민원을 넣는 민원왕 할머니 옥분(나문희)과 원칙주의자 구청 공무원 민재(이제훈)의 이야기다.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 영어를 배우고 가르치며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서 잔잔한 웃음과 감동이 유발된다.

여기까지는 흔한 휴먼 코미디의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옥분이 간직하고 있던 아픈 비밀이 밝혀지면서 영화의 속살이 드러난다. 어릴 적 옥분은 일본군 위안부였다. 고생 끝에 돌아왔으나 과거사를 숨긴 채 평생 외로이 살아야 했다. 미국 입양 간 남동생을 만나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한 그는 미 의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문회에 당당히 증언자로 나선다.

이제훈은 “나 역시 ‘소소하고 훈훈한 이야기구나’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읽다가 옥분의 사연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면서 “지금까지 나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재의 영화들이 역사적 아픔을 정공법으로 돌파했다면 우리 영화는 좀 더 따뜻하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나문희와의 호흡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이제훈은 “첫 대본 리딩 때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선생님께서 ‘제훈씨 연기 너무 좋다.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고 격려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다”며 “현장에서는 오히려 편안했다. 내가 굳이 어떤 연기를 하려 애쓰지 않아도 선생님을 보면 자연스럽게 리액션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자신을 친손자처럼 대해주는 대선배의 따뜻함에 어느새 푹 녹아들었다. “선생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마냥 좋았어요. 항상 저를 웃는 얼굴로 바라봐주시거든요. 틈 날 때마다 선생님과 도란도란 대화하는 게 정말 행복했어요. 순간순간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여전히 소녀 같으시다’는 생각을 감히 했던 것 같아요(웃음).”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한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에서 뜨거운 독립운동가의 삶을 살아봤던 그다. 전작에 이어 연달아 역사의식 짙은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에 대한 관심이 넓어졌다”는 이제훈은 “작품에 임하는 1차 목표는 관객의 재미이지만, 작품을 통해 사회적인 의미를 전하는 것 또한 배우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의 길을 걸은 지 어느덧 10년. “예전에는 연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직진했었다”는 그는 주연배우로서 주변을 살피는 유연함과 여유로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워나가고 있다.

“제가 사람들과 있을 때 재미있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이끄는 스타일이 아닌데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어요(웃음). 이제 낯선 사람에게도 먼저 말을 걸어요. 점점 변해가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앙상블이거든요. 함께하는 스태프들과 책임의식 연대의식을 공유해야 좋은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걸 알았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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