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미국적인, 너무도 미국적인

로이 리히텐슈타인 ‘Hopeless’. 1963. 유화. 리히텐슈타인 재단


“이 그림, 만화잖아?”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의 회화를 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던지는 말이다. 누가 봐도 만화 같은 그림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작가 또한 생전에 똑같은 질문을 무수히 받았다. 표절이라느니, 속이 텅 비었다느니 하는 질타도 거셌다.

그러나 미술계 반응은 뜨거웠다. 무언가 신선한 것, 가볍지만 강력한 것을 기다리던 미술팬들에겐 리히텐슈타인의 산뜻한 유화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앤디 워홀에 이어, 미국 팝아트에 새로운 동력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뉴욕의 눈 밝은 화상(畵商) 레오 카스텔리는 그의 ‘만화 그림’으로 전시를 꾸렸고, 컬렉터들은 앞다퉈 작품을 매입하며 호응했다.

‘절망(Hopeless)’이라는 이 그림 또한 만화에서 출발했다. 리히텐슈타인은 토니 아브루초의 원작만화를 모티프로, 금발의 소녀를 대형 화폭에 그려냈다. 엇갈린 사랑 때문에 애 태우는 순정만화 속 주인공은 검은 윤곽선과 선명한 색채,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로 강렬하게 다가온다. 만화를 차용했음을 알리기 위해 작가는 말풍선도 그려넣고, 얼굴도 망점으로 처리했다. 허나 자세히 보면 만화와는 크게 다르다. ‘회화로서의 표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는 지극히 미국적이다. 달콤하고 친근해 눈에 쏙 들어온다. 그 자신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며 치열하게 작업했지만 결코 ‘천재예술가’이길 원치 않았다. 단지 시대를 관통하며 대중이 열망하는 것을 드러내려 했을 뿐이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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