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트렌드 대전환, 서쪽 해돋이를 찾아서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도 참 드물다. 미국에서는 그가 1492년 불과 세 척의 범선을 이끌고 아메리카대륙에 도달한 날을 기념해 해마다 10월 12일을 ‘콜럼버스데이’로 지킨다. 지난 1992년에는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발견 500주년’이란 슬로건을 앞세우며 대대적으로 그의 공적을 기릴 정도였다.

반면 적잖은 역사가들은 콜럼버스 이전부터 아메리카대륙에 선주민이 살고 있었음을 들어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 운운하는 것부터 적절치 않다고 본다. 특히 그 선주민의 후예들은 콜럼버스가 백인·유럽 우월주의에 입각한 악명 높은 정복자의 한 사람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들의 입장은 반 콜럼버스데이다.

500여년 전 벌어진 사건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분명한 것은 콜럼버스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대서양항로’를 개척했고 그 성과가 이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인류 최초로 지구일주항해라는 위업을 이룰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인류의 시야가 유럽에서 지구 전체로 확장되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또한 콜럼버스는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은 벤처사업가였다. 이미 15세기 후반 유럽에는 중앙아시아·중국여행(1271∼1295)을 기록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알려져 있었고, 지구가 구형이라는 주장도 일부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느 한 쪽으로 곧장 나아가면 종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했다.

이에 모험가 콜럼버스는 동방견문록에 기록된 동쪽의 황금왕국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 동쪽으로 곧바로 직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교도들에게 장악되면서 값비싼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동쪽으로 갈 수 없었다. 콜럼버스가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면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더불어 새로운 흐름이 일렁이고 있었다. 때마침 스페인왕국은 오랫동안 이베리아반도 남쪽을 지배했던 무어인들을 몰아내면서(1492) 콜럼버스의 벤처사업 제안에 동의했고 그에게 탐험자금을 제공하기로 결정한다. 그야말로 트렌드 대전환이다. 이로써 스페인은 15세기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인 포르투갈을 제치고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를 얻는다.

21세기 들어 세계는 500여년 전 콜럼버스가 직면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규모의 트렌드 대전환의 시대로 돌입했다. 인류의 제품생산능력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증기기관의 발명을 통한 기계의 등장, 내연기관과 전기가 결합한 대량생산체제, 컴퓨터의 등장으로 뿌리내린 자동화·효율화 등을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를 각각 1·2·3차 산업혁명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차수가 늘어갈수록 변화는 빨라지고 범위는 넓어지고 있다.

급기야 기술발전은 생산능력을 겨루는 산업분야는 물론 노동행태를 비롯해 소비현장 및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특히 3차 산업혁명의 주축을 이룬 디지털기술은 슈퍼컴퓨터와 촘촘한 연결망을 통해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잇고 소비자와 생산자, 산업과 문화 등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를 가리키는 각국의 용어도 ‘4차 산업혁명’ ‘인더스트리 4.0’ ‘매뉴팩토링 3.0’ ‘소사이어티 5.0’ 등 다양하다. 문제는, 예컨대 많이 거론되는 4차 산업혁명을 구성하는 키워드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것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상호결합할지 그 궁극적인 종착점은 어디일지 명확지 않다.

불확실성은 종종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럴 때일수록 생각이 중요하다. 사고의 높이를 유지하거나 끌어올려야 길이 열린다. 이를 위해 먼저 작금의 트렌드 대전환을 명확하게 읽어내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국민일보가 오는 21일 ‘2017 국민미래포럼’을 개최하면서 ‘트렌드 대전환, 서쪽 해돋이를 찾아서’를 주제로 삼은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트렌드 대전환에 대응하는 힘은 콜럼버스적인 사고, 즉 발상을 바꾸고 틀을 뛰어넘는 도전적 사고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서쪽’이란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길, 꿈꿔보지 못했던 방법들을 총칭한다.

마찬가지로 북핵, 저출산·고령사회 등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수많은 난관조차도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을 앞세울 때 해법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서쪽 해돋이를 찾아나서야 하는 이유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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