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깜짝 놀라서 겁을 먹는 ‘식겁’



“휴, 식겁했네.” 만약 밤중에 산길을 운전하는데 동물 같은 게 갑자기 뛰어든다면 어떨까요. 무섭고 겁나겠지요. 식겁(食怯)은 뜻밖의 상황에 놀라 ‘겁을 먹는다’는 말입니다.

怯은 무서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지요. 원래 마주친 사나운 짐승 앞에서 마음(心)이 두렵고 무서워 피하거나 도망간다(去, 갈 거)는 의미를 가진 글자입니다. 갑자기 몹시 놀라거나 겁에 질려 숨이 막힐 듯한 기겁(氣怯), 떳떳하지 못하고 겁이 많은 비겁(卑怯) 등에 들어 있습니다.

이런 ‘겁’도 있지요. 劫. 상대가 怯을 먹도록 무서운 말이나 행동으로 을러대고 위협한다는 의미의 글자입니다. 힘(力)으로써 물건을 빼앗아 간다(去)는 뜻이지요. 劫을 써서 남의 것을 빼앗는 겁탈(劫奪), 상대를 자신의 뜻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겁박(劫迫) 등에 쓰입니다. 力 대신 刀(칼 도)를 붙여 쓰기도 하는데, 글자의 본뜻을 알 만하지요. 劫은 영겁, 억겁처럼 무한히 긴 시간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로는 찰나, 소나기처럼 지나가는 비가 오는 잠시 동안이라는 뜻의 삽시간, 눈 한 번 깜짝하거나(瞬 순) 숨 한 번 쉴(息 식) 만한 아주 짧은 동안인 순식간 등을 들 수 있겠지요.

‘핵’으로 사람들을 겁박하려 드는 자가 있지요. 진짜 겁나게 무서운 게 뭔지 모르는가 봅니다.

글=서완식 어문팀장,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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