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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북핵 문제, ‘돌고래 외교’로 극복해야”

롯데월드타워에서 촬영한 서울의 야경이다. 신기욱 교수는 불야성을 이루는 서울의 밤거리를 언급하면서 "뉴욕이나 파리, 런던, 도쿄나 상하이의 거리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한국인들의 인간관계가 겉보기와 달리 얄팍하다는 의미에서 책 제목에 '슈퍼피셜(Superficial·피상적인)'이라는 단어를 넣었다고 한다. 국민일보DB




기대가 컸을 것이다. 오랫동안 타향살이를 하다 고국에 장기체류할 기회를 얻었으니까.

남자는 당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못 가본 곳들도 둘러보고 생각할 시간도 가져야겠다. 주말엔 미술관이나 가볼까.’ 하지만 계획은 고국에 도착하마자마 산산조각이 났다. 서울에서 호젓한 삶을 살기란 불가능했다. 조찬 모임과 점심 약속, 저녁 술자리가 간단없이 이어졌다. 미국 같으면 전화로도 가능한 얘기를 한국에선 만나서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때로는 자랑스럽게 말하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실상이, 사실은 다들 거센 파도에 떠밀려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파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과연 이처럼 숨 가쁜 생활을 감당해낼 수 있었을까.”

이렇게 자문하는 이 책의 저자는 해외에서 아시아 전문가로 유명한 신기욱(56) 교수다. 미국 스탠퍼드대에 근무하는 그는 안식년을 맞아 2015년 고국에 들어와 8개월간 서울에 머물렀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게 1983년이니 32년 만이었다. ‘슈퍼피셜 코리아’엔 당시 한국에 살면서 그가 느낀 점들이 소상하게 실렸다. 고국을 향한 애정 어린 조언도 담겨 있다.

눈길을 끄는 건 한국 대학을 향한 가차 없는 비판이다. 대학이 달라지지 않으면 그 어떤 문제도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기다랗게 이어진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자교(自校) 출신 교수를 주로 임용하는 대학들의 행태다. 신 교수는 “한국 대학은 아직도 동종교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2014년에 나온 한 자료를 보면 서울대는 84.1%, 연세대는 73.9%, 고려대는 58.6%를 자교 출신 교수로 채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객관적인 교수 평가도, 대학에서 다양한 학문이 공존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폴리페서’를 향한 질타도 매섭다. 교수들의 전문성이 국가정책 수립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무작정 비판할 순 없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나 콘돌리자 라이스도 교수 출신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유명 교수라도 관련 부처 국장이나 차관보 등을 맡아 실무 경험을 쌓은 뒤에야 장관에 임명된다. 한국처럼 교수가 곧바로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에 발탁되는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

“문제는 교수들의 지나친 외부활동, 특히 정치권력과의 밀착이 지식인 사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폴리페서의 정치 활동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 규제와 감시가 심한 한국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놓치고 있다.”

인상적인 주문이 한두 개가 아니다. 서울대 정원의 20∼30%를 지방 국립대 출신 편입생으로 채우자는 게 대표적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년제 대학에 다닌 많은 학생이 명문대에 편입한다. UCLA만 하더라도 정원의 30%가 편입생이다. 신 교수는 “교육 생태계 내의 순환이 이루어진다면 한 번 루저는 영원한 루저가 아니고 재수, 삼수를 하지 않아도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므로 입시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적었다.

우리 사회 전반을 일별하던 시선은 한국의 외교 문제로 향하는데, 북핵 문제가 심각한 작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참고할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책에 담긴 표현처럼 열강에 둘러싸인 한국은 오랫동안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였다.

신 교수가 내놓는 해법은 이른바 ‘돌고래 외교’다. 고래보다 몸집은 작지만 더 민첩한 돌고래처럼 실리를 좇으면서 때론 강대국에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령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문제만 하더라도 중국 눈치를 살피느라 움츠러들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중국에 ‘반대할 거면 북핵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라.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국가 안보를 위해 사드 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역공을 취해야 했다. 전략적 모호성 운운하다가 갑작스레 배치해 중국으로 하여금 배신감만 느끼게 하고, 중국의 경제 보복에 당황한 형국이 안타깝다.”

책에 담긴 한반도 문제 해법은 간명하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 그는 미국이나 중국은 산적한 다른 현안 탓에 뚜렷한 해법을 내놓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망한다. 그런데 이 책을 쓰던 시점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단행하기 전이었다. 첨언할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책 출간을 기념해 잠시 한국을 찾은 신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대북 문제에 대한 기조는 책에 쓴 내용에 참고하면 될 것”이라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당분간 국제사회는 북한을 상대로 압박의 수위를 끌어올릴 겁니다. 우리도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동참해야 하겠죠. 하지만 그 다음 수순도 생각해야 합니다. 북핵 문제가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준비해놓아야 합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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