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담벼락은 그의 캔버스

뱅크시 ‘풍선과 소녀’. 2004. 벽에 스텐실 기법


지구촌에는 별의별 작가들이 다 있지만 영국 작가 뱅크시는 거리의 담벼락이 작업의 무대다. 후미진 골목의 외벽이며 교각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캔버스다. 물론 이런 곳에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건물주의 허가도 받지 않았으니 무단이다. 그런데 뱅크시의 낙서와 그림은 특별대접을 받는다. 세상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비틀거나 인간의 감춰진 이면을 위트 있게 꼬집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도 공공장소의 낙서는 골칫거리다. 그러나 뱅크시의 등장으로 그래피티에 대한 인식은 바뀌었다. 촌철살인적 풍자로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는 작업은 ‘그래피티 아트’로 받아들여진다. 런던의 혹스턴 쇼디치 워털루 등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뱅크시 작업을 찾아가는 아트 투어도 인기다.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는 런던 사우스뱅크 지역에 그려진 것으로, ‘날 선 풍자’로 가득 찬 여타 작업과 달리 따뜻하고 감성적이다. 소녀가 하트 모양의 빨간 풍선을 놓친 건지, 하늘로 올려 보내는 건지 해석이 분분한데 바로 그런 여지가 매력이기도 하다. 철저히 익명성을 추구하는 작가 대신, 그의 작업들을 사진에 담아온 마틴불은 ‘떠나야 할 때는 호들갑 떨지 말고 조용히 떠나라’는 메시지가 있다고 밝혔다.

뱅크시는 한밤중에 몰래 등장해 그림을 남긴 뒤 사라진다. 항상 가면을 쓰고 작업해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반제도권 예술을 추구하지만 그의 작업은 제도권으로 편입된 지 오래다. 그래피티 아트야말로 아이러니한 세계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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