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선장 없는 ‘국립오페라단호’의 선원들


 
국립오페라단의 첫 야외오페라 ‘동백꽃아가씨’ 출연진이 지난달 2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 잔디마당 무대에서 열연하고 있다. ‘동백꽃아가씨’ 공연은 단장이 돌연 사임하고 출연진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마무리됐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이 창단 이래 최초로 시도한 야외 오페라 ‘동백꽃아가씨’가 지난달 26∼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 잔디마당에서 공연됐다.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의 최초의 오페라 연출이라는 점이 기대와 동시에 우려를 모았을 뿐만 아니라 캐스팅이 내정된 성악가가 계약 직전 갑자기 출연을 고사하고, 프로젝트를 지휘하던 단장이 돌연 사임하는 등 여러 변수와 위기가 있었던 작품이다. 작품 성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오페라단 내부에서는 수장 없이 무사히 공연이 마무리된 것만으로도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국립오페라단은 시스템 부재와 비연속적인 운영방식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여러 이유로 단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고, 공백이 최장 10개월이 넘었던 적도 있다. 특히 이번에 김학민 단장의 예고 없는 사의는 ‘동백꽃아가씨’를 비롯해 자신이 기획하던 프로젝트들이 다수 남겨진 상황에서 상당히 무책임하게 비쳐졌다.

과거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선장 없는 ‘국립오페라단호’가 난파되지 않도록 이끈 주축 인력은 경력 7∼8년에 이르는 17명의 무기계약직 직원들이었다. 연간 80억이라는 국립예술단체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은 예산을 다루고, 가장 스케일이 큰 예술을 다루는 이 조직은 전체 31명의 인력 중 정규직이 4명에 불과하다. 2015년 이전에는 1명이었는데 그나마 최근 3명이 늘어났다.

반면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합창단 등 예술의전당에 상주하는 다른 문체부 산하 예술단체들의 경우 직원이 10∼20명으로 사무국 규모가 오페라단의 절반 혹은 3분의 1에 불과함에도 최소 6명, 최대 10명의 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다. 즉 오페라단은 가장 큰 운영조직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규직은 가장 적은, 기형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오페라단의 무기계약직들은 근무조건이 정규직과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무기계약직’이란 불명예스런 꼬리표를 떼 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새로 확보된 3개의 정규직 자리가 오래 근무한 무기계약직 대신 신입 직원에게 돌아가면서 이들의 사기는 더욱 급격히 떨어졌다. 공공기관이면서도 인사위원회가 없어 단장에게 고용 권한이 쏠리면서 일어난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많다. 급여도, 노동 강도도, 다른 국립단체와 비교할 때 불리한 편이다. 이런 조건이니 1년 단위로 고용되는 사업계약직의 경우 양질의 인력들이 찾아오지 않고, 들어와서도 과중한 업무를 소화하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잦다. 영세한 민간 예술단이 아니라 대외 문화외교의 역할을 수행하는 국립 예술단체가 이런 비정상적인 고용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것이 국립오페라단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다른 국공립 단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천명한 문재인정부는 무기계약직도 비정규직 범주에 넣고 정규직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또한 ‘예술가의권익보장에관한법률’(가칭) 입법을 추진하며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불공정 거래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들의 정책이 호소력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 직속의 국공립단체들부터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국립오페라단의 경우 사람들의 관심은 공석인 단장 자리의 주인에게 쏠려있지만, 무대 뒤에서 묵묵히 국가의 일을 수행하는 이 불완전한 신분들에 대한 배려가 더 절실하다. 예술단원도, 전용극장도 없는 국립오페라단의 예술성과 역사는 3년 임기의 단장이 아닌 이 무기계약직원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마저 없다면, 국립오페라단은 실체가 없는 단체로 전락하고 만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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