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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배우는 더 많이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해야” [인터뷰]

4개월 간격으로 선보인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살인자의 기억법’을 통해 연기 자신감을 회복한 설경구. 차기작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촬영을 최근 마친 그는 ‘우상’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쇼박스 제공




덥수룩한 장발머리에 주름 자글자글, 비쩍 마른 60대 노인.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배우 설경구(50)의 얼굴이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 첫머리에 등장하는 이 강렬한 컷은 관객을 순식간에 극 안으로 끌어다놓는다. 30년 연기 내공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오는 7일 개봉하는 ‘살인자의 기억법’은 2013년 출간된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극 중 설경구가 연기한 병수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범.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받은 이후 17년간 살인을 멈추고 평범하게 살아 온 그 앞에 젊은 살인범 태주(김남길)가 나타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설경구는 “이야기에 매듭을 지어줘야 하는 영화는 소설과 다른 지점이 있다. 그래서 병수와 태주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대결구도를 만든 것”이라며 “소설과 별개의 영화로서 인정해주셨으면 좋겠다. 각각에 다른 맛이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소설과 달리 영화 속 병수에게는 인간미가 녹아있다.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가정폭력범 동물학대범 악덕장사꾼 등 사회악들을 ‘청소’하기 위해 살인을 감행한다. 태주와 대립하게 하게 되는 이유 역시 사랑하는 딸 은희(설현)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의 곁에는 말동무가 돼주는 경찰관 병만(오달수)이 있다.

설경구는 “병수 캐릭터가 변형 없이 원작 그대로 주어졌다면 암담했을 것 같다”며 “은희에 대한 부성애나 약자가 아닌 사회악들을 죽인다는 설정 등이 인물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줬기 때문에 내가 좀 더 편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연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이 작품을 택했다”는 그는 캐릭터에 다가가기 위해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벌였다. 특수분장으로 노인의 모습을 만들어내기보다 직접 늙어보겠다는 포부로 체중 조절에 들어갔다. 탄수화물을 끊고 최소한의 단백질만 섭취하며 10㎏ 이상을 감량했다.

“캐릭터의 얼굴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병수는 어떤 얼굴을 가지고 살까’란 궁금증에서 시작했죠. 화면에서 어떻게 보일지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건조한 얼굴로 가보자는 생각에 웨이트 트레이닝도 안 하고 기름기만 쫙 뺐어요. 살 빠지는 거 볼 때 나름의 희열도 있어요(웃음). 그거 없으면 못 하죠.”

설경구는 “병수 캐릭터는 내게 큰 산이었다”면서 “알츠하이머라는 병은 누구에게 설명을 들을 수도, 간접경험을 해볼 수도 없는 것이어서 상상에 의존해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숙제였다”고 토로했다.

설경구에게 ‘살인자의 기억법’과 전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감독 변성현)이 남긴 의미는 남다르다.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졌던 그에게 다시 ‘치열하게 고민하며 연기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준 작품들이다. 연기에 대한 마음가짐과 접근법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됐다.

“오달수 배우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배우가 많이 고민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워해야 관객들이 작품을 더 풍부하고 즐겁게 보지 않을까’라고. 굉장히 중요한 말인데 깜박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두 작품이 제게 큰 영향을 줬어요. 예전에 작업했던 스태프들이 지금의 저를 보면 ‘이 사람 변했네?’ 할 걸요(웃음).”

흥행 면에서 부침이 있을지언정 설경구는 데뷔 이래 단 한 차례도 정상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주연 자리를 내려놓는다거나 대중에게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자연스러웠으면…. 수직낙하는 아니면 좋겠네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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