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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고승욱] 하이힐



하이힐의 기원은 4000년 전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와 양을 잡는 도축업자들은 굽이 달린 신발로 발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생김새는 비슷해도 느낌이 전혀 달라 하이힐의 진짜 기원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사람이 신는 신발이야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비슷할 터이니 말이다.

오히려 16세기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와 결혼한 카트린 드 메디치의 굽이 높은 신발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다. 포크와 아이스크림을 프랑스에 전해준 카트린은 갓난아기 때 부모를 잃었지만 삼촌인 교황 레오 10세 덕분에 프랑스 왕비가 됐다. 앙리 2세가 죽은 뒤 어린 장·차남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를 대신해 10년 넘게 섭정을 하며 신교도 대학살을 지휘한 ‘철혈여인’이다. 그런 카트린도 신혼시절에는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해 키가 커 보이는 신발을 신고 다녔다. 바로 이게 하이힐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영국 여왕 메리 1세도 비슷한 구두를 신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대략 그 즈음에 뒤꿈치를 발가락보다 높게 만든 하이힐의 원형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코트 슈(court shoe)로 불리는 이런 모양의 신발은 유럽 귀족들이 굽을 조금씩 높여가며 즐겼지만 프랑스혁명 때 ‘적폐’로 몰려 사라졌다. 굽 높이가 5㎝가 넘는 하이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해 1970년대 폭발적으로 유행했다.

여자 구두는 종류가 너무 많아 어렵다. 끈 없는 힐 모양을 총칭하는 펌프(pump), 발바닥 전체를 높은 통굽으로 만든 웨지(wedge), 낮고 굽이 좁은 키튼(kitten), 폭이 좁고 높은 스틸레토(stiletto)….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가 수해현장에 가면서 신은 구두가 바로 스틸레토 힐이다. 스틸레토는 폭이 좁은 단검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뭄현장을 방문한 대통령이 모내기가 막 끝난 논에 소방호수로 물을 쏟아부어 난리가 난 적이 있는데 정치인의 보여주기 행차는 여기나 거기나 다를 게 없는 듯하다.

고승욱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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