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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日 통과 미사일로 어정쩡한 美에 대화 압박 ‘벼랑끝 전술’



북한이 29일 탄도미사일을 기습 발사함으로써 내심 유화 국면을 기대했던 한·미 양국의 허를 찔렀다. 북한은 겉으로는 대화를 언급하면서도 행동에 나서지 않는 미국을 한층 더 강하게 압박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협상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공언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 12형’을 이용한 괌 포위사격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미사일이 정상 각도로 2700여㎞ 비행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괌이 타격 범위에 있다고 간접적으로 위협했다. 미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는 방법으로 대미 타격 능력을 과시한 셈이다. 동시에 미국과 공조를 유지하는 일본의 주요 도시가 사거리에 있다는 것도 재차 확인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발사 의도는 괌 타격 위협이 허세가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괌 타격을 실행할 능력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이른 시간 내에 대화에 나오도록 강요하면서 자신들의 로드맵대로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때 극한으로 치달았던 북·미 대립은 김 위원장이 지난 15일 “미국 행태를 더 지켜보겠다”고 말한 이후 한동안 진정 국면이었다. 때문에 북한 정권수립일(9·9절)까지 대형 도발이 없으면 북·미 대화가 열릴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았다. 이런 기대감이 반영돼 한·미는 지난 26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립도, 대화도 아닌 어정쩡한 국면이 이어지자 북한은 다시 도발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을 향한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면서도 현재 판세를 완전히 뒤엎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한 흔적이 보인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에 실질적 행동을 촉구한 것으로 본다”며 “미국을 직접 겨냥했다면 괌으로 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일동맹의 이완을 노린 측면도 있다. 북한이 사전 통보 없이 일본 상공에 미사일을 날린 것은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발사 이후 19년 만이다. 이른바 ‘대포동 쇼크’ 이후 일본인이 갖게 된 대북 안보 불안감을 자극해 일본 내 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다.

북한은 이번 도발 이후 정세 변화를 지켜보며 다음 행보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대북 강경 기조로 돌아선다면 북한은 9·9절이나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등을 계기로 6차 핵실험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 도발을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정세는 도발과 제재가 꼬리를 무는 악순환에 다시 빠진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북한의 도발이 계속 이어진다면 제재·대화 병행론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북한이 26일 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한때 300㎜ 방사포로 평가하는 등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젖어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날(현지시간) 열린 군축회의에서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각국 비판 성명이 쏟아졌다. 이에 한대성 북한 제네바대표부 대사는 미사일 언급은 피한 채 “거듭된 경고에도 미국이 적대 행위를 멈추지 않고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강력한 대응수단으로 맞서겠다”며 공세적 입장을 밝혔다.

글=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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