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순수의 결정체를 찾아

권진규 ‘Tomo’, 1951. 석고에 건칠(乾漆). 권진규기념사업회 & PKM갤러리


조각품 가운데 가장 많이 만나는 게 인체 조각이다. 유럽 유서 깊은 도시에는 인물상이 빠지는 법이 없다. 인물상 중에도 흉상과 두상은 가장 대표적인 장르다. 하지만 흔하다고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대상을 그저 똑 닮게 표현한 조각은 수두룩하나 대상의 본질을 압축한 조각은 흔치 않다.

권진규(1922∼1973)의 두상작품 ‘Tomo(도모)’는 평범한 듯하나 대상의 내면까지 오롯이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스물을 갓 넘긴 앳된 여대생의 모습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압축했다. 어딘가를 지긋이 응시하는 눈, 높지 않은 코와 꼭 다문 입에서 순수함과 함께 무언가를 희구하는 청춘의 갈망이 감지된다. 이 섬세한 두상은 1951년 권진규가 일본 도쿄의 무사시노미술학교에 다니며 만난 서양화과 여학생(도모)을 빚은 조각이다. 작품을 계기로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했고, 도모는 작가의 뮤즈가 됐다.

권진규는 졸업하던 해 일본 유명 공모전인 이과전에서 특대상을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교수직 제의도 받았으나 귀국해 돌, 브론즈, 테라코타를 넘나들며 인간 존재의 핵심을 빚는 데 평생을 바쳤다. 사실주의에 기반한 탄탄하면서도 예리한 리얼리즘 조각은 동서양 미학의 구분을 뛰어넘는다. 무사시노는 2009년 개교 80주년에 ‘무사시노가 배출한 최고의 작가’로 권진규를 선정하고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다섯 권에 달하는 권진규 전작도록 발간도 추진 중이다. 뛰어난 예술은 국가와 이념을 초월해 이렇게 사랑받는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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