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게임… ‘권투 룰’에 맥 못춘 맥그리거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오른쪽)가 2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 슈퍼웰터급 12라운드 복싱 경기에서 UFC 선수인 코너 맥그리거의 안면에 오른손 펀치를 날리고 있다. 메이웨더는 10라운드 TKO(테크니컬 녹아웃) 승리를 따내며 50전 50승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쓰고 은퇴를 선언했다. AP뉴시스


지난해 5월 종합격투기 UFC 최강자 코너 맥그리거(29·아일랜드)는 은퇴한 49전 49승의 ‘무패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40·미국)에게 복싱 대결을 제안했다. 맥그리거는 그해 겨울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발급되는 프로복서 라이센스까지 따내며 메이웨더를 자극했다. 메이웨더도 “맥그리거를 KO(녹아웃)로 무너뜨리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상상으로만 그려졌던 이들의 복싱 경기는 ‘세기의 대결’로 불리며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페이퍼뷰(PPV) 수입, 관중 입장 수입 등을 제외한 기본 대전료만 해도 메이웨더가 1억 달러(약 1100억원), 맥그리거가 3000만 달러(338억원)를 받는 초대형 경기였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메이웨더가 노련한 복싱 기술과 체력의 우위를 앞세워 맥그리거를 꺾고 50전 전승의 신화를 쓴 채 링을 떠났다.

메이웨더와 맥그리거의 12라운드 복싱 경기가 펼쳐진 2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 메이웨더는 검은색 복면을 쓴 채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링에 올랐다. 반면 맥그리거는 전날 계체량 측정 행사에서 괴성을 지르던 것과는 달리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등장했다.

모두가 메이웨더의 낙승을 예상했다. 전 세계 주요 도박사이트가 밝힌 평균 배당률은 메이웨더가 1.29배, 맥그리거가 5.25배였다. 메이웨더가 이길 확률이 4배 이상 높다는 의미였다. 맥그리거는 UFC 사상 최초로 두 체급을 동시에 석권한 실력파지만 복싱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였다.

공이 울리자 맥그리거는 공격적으로 다가섰다. 체격의 우위와 긴 리치를 앞세워 메이웨더의 안면을 노렸다. 왼손 어퍼컷으로 메이웨더에게 한 차례 타격을 입혔고, 뒷짐을 쥔 채 도발하기도 했다. 반면 메이웨더는 공격보단 수비에 치중하는 아웃복싱을 펼치며 후반을 노렸다.

메이웨더의 전략이 들어맞기 시작한 건 4라운드부터였다. 초반에 힘을 너무 쏟은 맥그리거가 힘들어 하기 시작했다. 이후 맥그리거는 라운드 후반으로 갈수록 힘에 부쳐 메이웨더에게 펀치를 허용했다.

9라운드부터는 메이웨더가 매서운 공격을 펼쳤다. 맥그리거의 안면에 유효타를 꽂으며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갔다. 맥그리거는 발이 풀렸고, 펀치 속도마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결국 10라운드 메이웨더가 연타로 TKO(테크니컬 녹아웃)로 승리를 가져가며 50번째 승리를 장식했다.

둘은 지난 15개월간 서로를 볼 때마다 으르렁대며 설전을 벌여왔다. 전날만 해도 맥그리거는 “메이웨더를 2라운드에 쓰러뜨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메이웨더는 “복싱은 입이 아니라 주먹으로 싸우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에는 서를 마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고, 뜨거운 포옹으로 세기의 대결에 마침표를 찍었다.

경기가 끝난 뒤 메이웨더는 “정말 나의 마지막 경기였다. 이제는 진짜 은퇴하겠다”며 “복싱과 종합격투기는 모두 위대한 스포츠다. 내 마지막 댄스 파트너가 되어준 맥그리거에게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판정승을 거두고 싶지는 않았다. 경기 초반보다는 후반 7∼9라운드에 맥그리거가 체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전략이 잘 맞아들었다”고 설명했다.

메이웨더는 전설의 복서 록키 마르시아노(49전 49승)보다 1승을 더 쌓고 링을 떠나게 됐다. 메이웨더는 링을 떠나기 전 “록키는 전설이다. 나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본인에게 상당히 유리했던 복싱룰로 경기가 펼쳐졌고, 단 한 번도 복싱 경기를 하지 않은 ‘복싱 초보’ 맥그리거와 10라운드까지 갔다는 점에서 ‘복싱 전설’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는 비난도 나온다.

맥그리거는 일방적인 경기가 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10라운드까지 버텼다. 특히 10라운드에서 메이웨더에게 연타를 내줬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쓰러지지 않는 정신력을 보여줬다.

맥그리거는 “메이웨더의 펀치가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레프리 스톱은 조금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장에 오신 팬들께 감사드린다. 옥타곤이 아닌 링에서 펼친 재미있는 경기였다. 이제 옥타곤으로 돌아가 선수생활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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