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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정유라 승마 지원’이 유죄 핵심 근거

삼성그룹 측 변호인단 송우철 변호사가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1심 판결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다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으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은 김종훈 변호사. 최현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발목을 잡은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정경유착이었다. 법원은 특정인을 위해 금전을 요구한 대통령을 질타하면서도 “정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목적을 이루겠다는 부정한 의도로 돈을 낸 기업인도 엄벌해야 한다”고 했다. 국정 최고지도자인 대통령과 재계 서열 1위 총수가 공익(公益)을 빙자해 각자의 사익(私益)을 채웠다면 뇌물에 해당한다고 못 박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25일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등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며 핵심 근거로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을 들었다.

이 부회장 등은 삼성 계열사 자금을 동원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독일 승마 훈련에 77억원을 투입했다. 삼성 측은 “올림픽에 대비해 승마 선수들을 지원해 달라는 대통령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원을 해주다 비선실세 최씨의 존재를 알게 됐고,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식해 어쩔 수 없이 요구에 응했다고 했다.

법원은 삼성의 피해자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먼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뇌물이 오고갈 만한 대가 관계가 있었는지 살폈다. 이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개별 현안에 대한 구체적 청탁은 없었다”고 봤다.

하지만 삼성그룹에 이재용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은 존재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비롯해 그룹 전체 차원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적극 추진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공무원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이익의 대가관계가 인정된다면 제3자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지난 3월 대법원 판례를 들며 “대통령의 직무와 이 부회장 간에 대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쟁점이었던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범 관계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오래전부터 개인적 친분 관계를 맺어온 점,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승마 지원 상황을 최씨에게 계속 전달받은 점 등에 비춰 공모 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이어 “공무원(박 전 대통령)과 비공무원(최씨) 간에 공범관계가 성립할 경우 경제적 (공동체) 관계는 유무죄 인정에 필요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이 내세웠던 법리적 주장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최씨가 조카 장시호씨와 함께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이 16억원을 후원한 혐의도 뇌물로 인정됐다. 다만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된 204억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청와대를 통해 여러 재벌 총수에게 요청한 점에 비춰 삼성 경영권 승계만을 위한 뇌물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나머지 네 가지 혐의도 줄줄이 유죄로 판단했다. 뇌물죄에 이어 삼성 계열사 자금 80억원을 횡령해 해외반출하고 범죄수익을 은닉한 혐의까지 더해지며 이 부회장은 실형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6일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최순실과 정유라를 몰랐다”고 증언한 것도 위증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정씨 승마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두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며 거짓말이라 판단했다.

양민철 이가현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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