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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부재 장기화… ‘뉴 삼성’ 구상 표류 불가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왼쪽부터)가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법원이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하면서 삼성그룹은 80년 그룹 역사에서 첫 총수 실형이라는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유례없는 총수 공백으로 인해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추진해온 ‘뉴삼성’ 구상 등 글로벌 경영의 장기간 표류가 불가피해졌다.

삼성그룹은 이날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중형이 선고되자 망연자실했다. 지난 7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하면서 ‘실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긴 했으나 현실화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 관계자는 “주요 혐의에 대해 재판부가 모두 유죄로 인정할 줄은 몰랐다”며 “매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삼성 내에선 총수 부재가 당장 눈에 띄는 위기로 이어지진 않아도 장기적으로 그룹 전체의 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크다. 지난 2월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전자는 2분기 사상 최대인 14조7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지만 이는 과거 투자의 결과물이다.

당장 속도를 높이던 인수·합병(M&A) 등 그룹 재편 작업이 올스톱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국내 기업 사상 최대 금액인 80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자동차 전장 오디오 전문기업 ‘하만’을 인수했다. 2015년 삼성페이의 바탕이 된 ‘루프페이’와 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업체 ‘예스코 일렉트로닉스’를 인수했고,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업체 ‘데이코’도 지난해 사들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대규모 M&A가 1건도 없다. 한화에 방위산업 및 화학 계열사를 매각한 것과 같은 사업구조 개편 작업도 중단된 상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시절 중소기업청 수석고문을 지낸 매트 와인버그는 지난 11일 허핑턴포스트에 “혁신의 리더로 불리는 삼성이 흔들리고 있다”며 삼성이 소니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룹 경영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중심으로 계열사별 전문경영인 중심의 비상체제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이 2008년 4월 삼성 특검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가동됐던 ‘사장단 협의체’를 재가동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일시적으로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번 선고로 삼성의 대외 이미지 타격 역시 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ACP)’에 따른 피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FACP는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뇌물 제공 시 벌금 및 사업기회 박탈 등의 제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이 미국 상장사는 아니지만 2008년 법 개정에 따른 적용 대상 확대로 제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 부회장이 지난 7일 결심공판에서 “오해와 불신이 풀리지 않으면 저는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인이 될 수 없다”고 밝힌 만큼 향후 리더십 회복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당분간 항소 절차에 집중하면서 그룹 경영과 관련해 모종의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글=김현길 심희정 기자 hgkim@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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