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둔황, ‘명사산’을 그리다

황주리 그림


실크로드의 시작이며 마지막 기착지인 중국 간쑤성 ‘둔황’을 한 번 가 본 사람은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모래가 우는 산’이라 하여 ‘명사산’이라 불리는 사막에서 머물렀던 순간들을. 이왕이면 깊은 가을에 가면 모래 우는 소리가 마음 속 깊이 와 닿을 것이다. 우루무치에서 밤기차를 타고 고비사막을 넘어 돈황에 도착했던 새벽을 떠올리니 어언 십년이 흘렀다. 밤기차에 흔들리며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타클라마칸사막을 바라보며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한없이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실크로드 여행은 그때만 해도 낙타에 짐을 가득 싣고 천산산맥을 넘어가던 중앙아시아의 상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힘든 여행길이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여행 상품이 돼있었다. 그래도 옛날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상인들의 길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둔황 산장’은 실크로드 냄새를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숙소였다. 4층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보면 부는 바람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하는 명사산이 바라다 보인다. 새벽과 일출과 한낮과 일몰과 밤을 다 지켜볼 수 있었던 잊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 곳에 앉아 사막으로 이루어진 모래산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니 문득 아주 예전에 본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이 생각났다. 한없이 크고 넓은 중국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이 산에서 저 산을 단숨에 뛰어넘는 축지법의 영화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동사서독’은 내가 본 무협영화 중에서 가장 심오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너무도 아름다운 사막의 영상 말고도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주인공들의 독백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이 사막의 너머엔 또 다른 사막이 있다.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늘 궁금해 하지만 막상 산 너머엔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는 차라리 여기가 낫다고 여긴다. 예전에는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향을 떠나 10년 동안을 살아온 나는 고향인 이 사막조차 제대로 못 본 게 아닐까?” 사막이라는 상징으로 이루어진 영화의 배경은 마치 ‘세월은 내게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내게 곳 없다 하지 않네.’ 그런 시 구절을 떠오르게 하는 초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이다. 그 초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을 나는 둔황에서 만났다.

낙타를 탔던 기억도 생생하다. 내가 탄 몸집이 작은 어린 낙타는 어쩌면 사람을 처음 태운 듯 마냥 울어댔다. 왠지 나는 그 어린 낙타가 상술로 엮어진 흔한 인연이 아닌 듯 가슴이 찡했다. 낙타의 눈이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낙타의 등에서 몸을 내린 후 일별하고 돌아 선 뒤에도 계속 그 눈이 생각났다. 단 한 번도 죄를 저지르지 않고 생을 마감할 천사의 눈이었다. 동물의 눈을 들여다보면 갓난아이의 눈을 닮아 천사처럼 빛난다. 정붙이면 쥐나 뱀의 눈도 그럴까?

사막은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명사산 한가운데 한없이 널브러져 앉아 수시로 관광객을 태우고 모래 산을 몇 번이고 오르내리는 썰매꾼들의 사는 법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불려 이리저리 모양이 바뀌는 모래 산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보면 언제나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월아천’이 꿈처럼 아련하다.

명사산을 아쉬운 마음으로 뒤로하고 ‘막고 굴’로 향했다. 그곳은 모래 바람에 의해 형성된 크고 작은 600개의 석굴에 10개의 왕조가 천년의 세월에 걸쳐 만든 불교미술의 보고이다. 막고 굴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부처상을 만났다. 모나리자의 미소를 닮은 부처의 미소를 보면서, 문득 우리 어머니의 미소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고 굴에서 만난 부처는 우리 어머니처럼 크림슨 빛깔의 붉은 루즈를 바른 듯 빨간 입술을 하고 있다. “엄마, 늙을수록 야한 루즈를 발라야 돼” 하면서 어머니께 빨간 루즈를 사다준 생각이 났다.

석양에 명사산에 다시 오른다. 초승달 모양을 한 작은 연못 월아 천에도 다시 가본다. 시간에 따라 다른 색깔로 변하는 오아시스 월아천은 해가 지면 황금빛으로 빛난다. 타임머신을 탄 듯 신비로운 풍경이다. 명사산에서 사막을 내려다보며 나는 관광객들과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원주민의 삶이 한 장면에 등장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새벽이나 밤이 되면 고요한 곳, 달나라 같은 고적한 풍경 속에 옛날과 오늘이 공존하는 곳, 그 풍경 속에 도시 사막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풍경을 오버랩 시켜 그려보았다. 사람이 없으면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되고, 사람이 있으면 살아가는 무대가 되는 명사산의 모래사막은 내 그림 속에서 ‘그대 안의 풍경’으로 살아남았다. 정말 저 모래 사막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수 십 년을 살아 온 내 나라도, 아니 내 마음 속도 다 못 본 건 아닐까?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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