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월드

내전·기아·전염병까지… 삼중고에 죽어가는 예멘




아라비아반도의 석유 부국들 사이에 둘러싸인 예멘이 극심한 인도주의 위기를 겪고 있다. 내전으로 쪼개진 나라는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해방구가 돼버렸고 최근엔 콜레라까지 걷잡을 수 없이 창궐한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전쟁과 테러로 국가 인프라가 붕괴된 와중에 ‘역사책의 과거 페이지에나 나올 법한’ 모습으로 전염병이 급속히 번지는 예멘 현지의 비참한 상황을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예멘에서는 불과 3개월 만에 콜레라 등의 수인성(水因性) 질병으로 20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고 50만명 이상이 감염됐다. 사망자의 25%, 감염환자의 41%는 어린이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지난 50년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염병 발생이라고 지적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예멘 보건 분야 종사자들이 반년 넘게 급여도 받지 못한 채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병원도 약도 물도 없어 전염병 퇴치는 불가능하다”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NYT가 소개한 현지 농부의 사연은 예멘의 심각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근근이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오던 무하마드 나시르는 생후 6개월 된 아들 왈리드가 콜레라에 걸리자 주변에서 돈을 빌려 그나마 의료시설이 있는 수도 사나까지 왔다. 하지만 기능을 상실한 병원에는 넘쳐나는 환자로 뒷마당에 임시 텐트까지 세워져 있었다. 아이가 회복돼도 그의 수중엔 귀향할 여비조차 없는 상태다.

사나 주민인 야쿠브 알자예피도 NYT에 “우리는 말라죽어가고 있다”고 절규하며 6세 딸 샤이마가 극심한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8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한 알자예피는 “저금도 떨어져 딸에게 우유조차 사 먹일 수 없다”면서 “단지 파멸의 운명을 기다리거나 하늘의 도움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예멘이 직면한 인도주의 위기는 2015년 3월 이후 탈출구 없이 이어져 온 내전 상황에 기인한다. 오스만투르크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 자본주의 체제의 북예멘과 사회주의 체제의 남예멘으로 분단됐던 나라는 1990년 통일에 합의했지만 준비 없는 통일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예멘의 정세는 이후 이란과 연계된 예멘 후티 반군과 사우디라아비아의 지원을 받는 예멘 정부군 간 내전으로 이어지며 이슬람 종파 갈등의 최전선으로 변질됐다. 특히 혼전을 거듭한 내전 속에 정부군 측은 사나의 국제공항을 1년 넘게 봉쇄해 해외 구호 물품조차 반입되지 않아 국민들의 고통은 커져만 갔다.

국제 인도주의 단체들은 내전이 종식되지 않는 한 예멘의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은 예멘의 현 상황이 세계에서 가장 큰 인도주의적 위기이며 1000만명 이상의 예멘인이 즉각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라고 규정했다. 유엔은 올해 예멘 인도주의 지원에 23억 달러(약 2조5900억원)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하지만 지금까지 집행된 구호 기금은 그중 41%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한편 예멘의 일부 부유층은 조국을 탈출해 시민권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유럽 남부 지중해의 몰타 공화국에 정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방송은 23일 몰타 국민이 된 예멘인들의 소식을 전하면서 88만 유로(약 11억7000만원)에 국적을 살 수 있는 몰타의 시민권 제도를 소개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그래픽=이은지, 전진이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