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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만에 끝난 11억 사기범의 남태평양 도피행각

박모(50)씨가 21일 오전(현지시간)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의 나디 공항에서 피지 경찰에 팔뚝이 잡힌 채 한국 국적의 항공기 탑승대 계단에 발을 올렸다. 박씨가 계단을 모두 오르자 항공기에 타고 있던 한국 경찰청 외사수사과 경찰관이 박씨에게 수갑을 채웠다. 국적기는 국내 영토로 간주돼 한국의 경찰력이 작동할 수 있다. 박씨의 9년간 도피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2006년 1월 국내에서 고철상을 운영하던 박씨는 지인에게 “가스 충전소 인허가를 받으면 큰돈을 받고 되팔 수 있다”며 인허가 관련 비용을 투자하라고 했다. 지인은 박씨에게 2008년 4월까지 11차례 총 6억9000만원을 건넸다. 그러나 박씨의 말은 거짓이었다. 그는 사기로 충분한 돈을 챙기자 해외로 떠날 준비를 했다. 박씨는 앞서 3차례 고철을 팔겠다며 받은 돈을 떼먹는 수법으로 4억1000만원을 가로챈 사기꾼이었다.

그는 이렇게 챙긴 11억원을 갖고 아내 및 두 아들과 함께 피지로 출국했다. 한국 경찰은 박씨가 피지로 출국했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지만 잡을 방법이 없었다. 박씨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릴 경우 현지 경찰의 협조로 체포한 뒤 국내 송환이 가능하지만, 사기범죄의 경우 피해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에만 적색수배가 가능했다.

한국 경찰은 인터폴을 통해 피지 경찰에 국제공조수사를 요청해 박씨의 동태만 파악하고 있던 중 박씨가 2014년 1월 아내와 함께 피지 인근 섬나라인 나우루로 이사 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나우루는 인구 9500여명, 면적 21㎢로 세계에서 3번째로 작은 나라였다. 경찰 관계자는 22일 “박씨는 피지에서도 사기를 치다가 교민들과 사이가 나빠져 나우루로 도망간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그래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경찰청이 지난 4월 적색수배 신청 요건을 사기범의 경우 피해액 5억원 이상으로 낮췄다. 인터폴을 통해 박씨 체포를 요청할 법적 근거가 생긴 것이다. 경찰청은 한 달 뒤 박씨에 대해 적색수배를 내렸다. 나우루 경찰은 지난 18일 박씨를 체포해 큰 공항이 있는 피지의 경찰에 인도했다. 한국 경찰은 사상 처음으로 나우루 경찰과 국제공조 수사를 벌여 도피 중인 범인을 국내 송환하는 데 성공했다.

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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