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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직접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종교나 관습 등 동질성이 높은 구성원들의 공동체였으니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좋은 조건이었다. 18세가 되면 정책결정권을 가진 민회(民會)에 출석할 권한이 생긴다. 보통시민에 의한 정치가 일반적 인식이었기에 관직은 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선출된다. 더 이상의 민주주의가 없겠다.

직접민주주의의 고향 아테네는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제자 플라톤이 그의 재판을 기록한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어리석은 다수의 결정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준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등의 억울한 혐의였지만 변론은 당당하고 거침없었다. 하지만 이미 지배층에 미운 털이 박힌 그에게 시민법정은 독배를 안겼다.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참패, 전 시민이 상처를 받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소크라테스는 대중의 감정을 이용하고 영합하려는 정치인들을 신랄히 비판했었다.

플라톤은 이 재판을 보고 대중의 우매함에 두려움을 느꼈다. 민주정치가 어리석은 군중에 좌우되는 중우(衆愚)정치로 타락할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상적인 철학자가 정치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플라톤의 철인(哲人)정치가 싹튼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대중영합주의 정치나 정치리더십 결여를 공격할 때 중우정치라 표현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국민인수위 대국민 보고회’에서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정치가 낙오된 것도 직접민주주의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대통령이니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더 나은 정치가 될지, 중우정치가 될지 지켜보면 평가가 내려질 게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변론을 마친다. “이제는 가야 할 시간입니다. 저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아가기 위해 떠날 시간입니다. 우리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 쪽으로 가게 될지는 신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글=김명호 수석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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