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해어지다(해지다)는 닳아 떨어지는 것



집에 형이 서넛 있다 하면 말할 것도 없겠고, 한둘만 있어도 추석 같은 명절에 바지 하나 새것 입어본다는 것은 애당초 글렀던 것입니다.

대물림 때문이었는데, 어쩌다 엄마가 장에서 내 바지 하나 사 오신 날도 있었지요. 만지작거리면 풍기던 나프타 냄새가 참 좋았습니다. 한두 치수 큰 바지였는데, 바짓단을 두어 번 접어 입었지요. 키가 크는 대로 내년에 한 겹, 후년에 또 한 겹 풀고…. 거친 장난을 하며 뒹굴다보면 무릎이며 엉덩이께가 해집니다. 윗도리도 소매며 목깃, 닳고 닳아 해지지요. 식구 모두 잠든 밤, 엄마가 등불 아래에서 해진 옷이며 양말들을 기우셨습니다.

‘울며 헤진 부산항을 돌아다보니/ 연락선 난간머리 흘러온 달빛/ 이별만은 어렵더라 더구나 정 들인 사람끼리….’

‘울며 헤진 부산항’이란 제목의 노래인데 신파조가 자못 심금을 울립니다. 정별(情別)은 언제나 아픈 건가 봅니다.

‘헤지다’는 모여 있던 이들이 흩어지다, 사귐이나 맺은 정을 끊고 갈라서다는 뜻 ‘헤어지다’의 준말입니다. ‘몸살을 앓고 나니 혓바닥이 다 헤졌네’처럼 살갗이 터져 갈라지다는 뜻도 있습니다.

‘해지다’는 옷감 같은 게 닳아서 떨어지다는 뜻 ‘해어지다’의 준말입니다. “양말이 헤졌네.” 양말에 구멍이 났거나 나려고 한다는 말이겠는데, 해진 것이지 헤진 게 아닙니다.

글=서완식 어문팀장,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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