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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진정한 전쟁영웅은 ‘과학자’



메리 로치는 세상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책을 펴내는 논픽션 작가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빌 브라이슨이나 말콤 글래드웰 같은 저술가들이 섭섭해 하겠지만, 로치를 아는 독자라면 저 말에 얼마간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특한 소재를 골라 꼼꼼하게 취재한 뒤 능청스러운 유머를 가미해 맛깔나게 풀어내는 실력은 당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로치는 전작 ‘인체재활용’에서 인간의 시신을 둘러싼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봉크’를 통해 성관계의 내밀한 과학적 원리를 들려줬다. 그가 이번에 고른 아이템은 군사과학의 세계. 로치의 팬이라면 예상할 수 있듯 전쟁터의 전략이나 고도의 기술이 들어간 무기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책의 공략 포인트는 엉뚱한 데에 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영화로 만들지 않을 측면들에 관심이 있다. 즉 죽이는 쪽이 아니라 목숨을 지키는 일과 관련된 쪽이다. …이 책은 전투가 벌어진 뒤에 실험복 자락을 휘날리면서 달려가는 과학자들과 외과 의사에게 표하는 경의다.”

서문에 등장한 사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닭을 시속 650㎞ 이상의 속도로 허공에 쏘아올리는 ‘닭 대포(Chicken Gun)’를 도마에 올린다. 닭 대포는 공군 항공기가 조류와 부딪혔을 때 충돌에 견디는 능력을 실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다. 로치는 닭의 숭고한 희생을 추켜세우면서 “때로는 닭이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적었다.

신기한 이야기가 간단없이 이어진다. 총알 습기 열기로부터 보호막 역할을 하는 최첨단 군복, 폭발물 지대에서 차량을 모는 군인의 안전을 지켜주는 갖가지 장치에 대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눈길을 끄는 지점은 인간의 목숨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한 과학자들의 생애다. 가령 어떤 학자는 인간의 면역력을 시험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코브라의 독을 주사했다. 또 다른 학자는 죽은 사람의 피를 수혈해도 안전한지 알아보려고 시체의 피를 수혈 받았다.

전쟁 영웅이라고 하면 전장에서 혁혁한 업적을 쌓은 장군이나 첨단 무기를 개발한 인물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음지에서 평생을 바친 과학자들의 삶을 되새길 수밖에 없다.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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