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를 위한 깜짝 은퇴식, ‘황제를 위하여’





21세기 최고의 스프린터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사진)가 출발선으로 걸어가더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난 10여년간 온갖 기록을 세운, 육상 단거리의 신화가 싹튼 정든 트랙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천천히 트랙을 돌았다. 자신의 100m와 200m 세계기록(각 9초58, 19초19)을 새긴 전광판 앞에서 특유의 번개 세리머니를 펼쳤고 관중석 가까이로 가 팬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트랙 위로 내려온 어머니와 아버지를 발견하자 함께 어깨동무하며 감격에 젖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14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2017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모든 일정이 끝난 뒤 ‘볼트를 위한 깜짝 은퇴식’을 열었다.

남자육상 100·200m 세계기록 보유자이자 세계선수권 금메달 11개, 올림픽 금메달 8개에 빛나는 볼트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고별무대였던 이번 대회에서 볼트는 훈련 부족 등의 여파로 남자 100m 동메달에 그쳤고 400m 계주에선 허벅지 경련으로 트랙에 주저앉으며 레이스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운 성적이었지만 팬들은 떠나는 ‘육상황제’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IAAF의 깜짝 은퇴식은 볼트도 당일에야 알 정도로 극비리에 준비됐다.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볼트에게 마련해준 것이다. 볼트는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고 감격해 했다. 이어 “이렇게 지금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며 은퇴 소감을 밝혔다.

세바스찬 코 IAAF 회장과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런던올림픽 스타디움의 트랙 조각을 떼어내 액자에 담아 선물했다. 트랙 조각엔 볼트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뛴 레인 번호인 ‘7’이 새겨져 있었다. 당시 볼트는 100m, 200m는 물론 400m 계주까지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은퇴식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볼트는 “이번 대회 100m 결승 이후 ‘누군가가 전설적 복서 무하마드 알리도 마지막 경기에서는 패했다’고 말해줬다”며 “마지막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극적 ‘은퇴 번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많은 스포츠 스타가 은퇴 번복 후 복귀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고 단언했다.

볼트는 “나는 항상 내가 해온 노력을 대회마다 증명해 왔다. 나의 커리어 전체가 그렇다”며 “젊은 세대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남겼다면 내 현역 시절은 정말 행복했던 것”이라고 자신의 업적에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쾌한 성격의 그는 마지막으로 “이제부터 가장 먼저 할 일은 파티를 열고 즐기는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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