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박현동] 죽음의 백조



백조는 우아하다. 하얀 털에 기다란 목과 가는 다리를 가졌다. 사람으로 치면 최고의 몸매를 자랑할 만하다. 일자리 얻지 못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스스로를 ‘백조’라고 할 정도다. 독버섯이 그러하듯이 아름다움엔 치명적인 요소가 있는 법. 미국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생김새는 우아한 백조를 닮았으나 그런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가공할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스토리에도 유사한 흐름이 있다. 주인공 오데트는 마법에 걸린 착한 공주인 반면 오데트로 변신한 오딜은 악마의 딸이다. 천사의 얼굴 속에 악마의 변신이 숨어 있다.

B-1B 랜서가 지난 5월 이후 11차례나 한반도에 떴다. 평양에 억류됐다가 식물인간 상태로 풀려난 오토 웜비어가 숨진 지난 6월 20일과 김일성 사망 23주기인 지난달 8일에도 한반도 상공을 비행했다. 김정은 겁주기 비행이라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선제타격 또는 예방타격을 위한 훈련비행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느 경우든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불길한 징조다.

B-1B 랜서는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다. B-52, B-2와 함께 미 공군 3대 전략폭격기의 하나로 F-16 엔진 4대를 장착, 1만5000m 고도에서 마하 1.25 속도로 9400㎞ 거리를 비행할 수 있다. 최대 56t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으며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한반도까지 2시간여 만에 도착하는 능력을 지녔다. 냉전시대 옛 소련과의 핵전쟁을 염두에 두고 개발됐으나 2011년 미·러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따라 핵 탑재 능력은 제거됐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1998년의 ‘사막의 여우작전’과 아프가니스탄, 리비아에서 활약하며 죽음의 백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B-1B 랜서의 한반도 비행을 전쟁과 연결하는 시각이 우세하나 오히려 전쟁을 피하기 위한 시그널이라는 해석도 있다. 만에 하나 전쟁이 현실화된다면 북한은 치명적 결과를 피할 수 없다. 레짐 체인지에 이어 김정은은 목숨을 부지 못할 수 있다. 미국도 상처를 입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 몰릴 수 있고, 미국은 G2의 위치를 위협받을 수 있다. 동북아 질서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죽음의 백조가 한반도에 출몰하는 것은 전쟁을 억지하기 위한 제스처라는 역설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유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끔찍하고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이 핵전쟁이 터진다면….

글=박현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