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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영석] ‘인생은 이호준처럼’



‘국민 타자’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의 은퇴 투어가 시작됐다. 대전을 시작으로 10개 구단 경기장을 돌며 계속된다. 한·일 통산 600홈런, KBO리그 최다 홈런, 최다 타점, 최다 루타 등 무수한 기록을 제조한 그다. 올바른 인성까지 갖췄기에 은퇴 투어의 롤 모델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이 같은 이승엽 은퇴 투어에 가려진 이가 있다. 이승엽처럼 올해 은퇴를 미리 선언한 NC 다이노스 이호준이다. 1976년생으로 KBO 최고령 선수다. 94년 해태 타이거즈에 투수로 입단했다 타자로 전향한 24년차다. 8명뿐인 300홈런 클럽 멤버다. 역대 타점에서 그를 앞선 이는 이승엽 양준혁(전 삼성)밖에 없다.

그에겐 KBO 차원의 은퇴 투어가 없다. 은퇴 예고 사실조차 많은 이가 모른다. 화려함이 없었기 때문일까. 개인 타이틀을 거머쥔 건 2004년 타점왕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골든글러브는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주로 활약했던 지명 타자나 1루수 부문에 당대 최고 타자들이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기록은 화려함 보다는 ‘꾸준함’의 결과물이었다. 98년 주전 선수가 된 이후 14시즌을 100경기 이상 출전했다. 최고령 2000경기 출전도 그의 몫이었다.

이호준에게 깜짝 선물이 전달됐다. 지난 9일 인천에서 열린 NC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 앞서 양팀 선수들이 더그아웃 앞에 도열했다. 전광판에는 SK 유니폼을 입은 이호준의 영상이 등장했다. 2000년 SK 창단 멤버로 합류해 2012년까지 주축 선수로 활약했던 모습이었다. 꽃다발 증정도 이어졌다. 이날은 이호준이 선수 자격으로 인천을 방문한 마지막 날이었다. 후배들이 준비한 존경의 이벤트였다.

야구팬들에겐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란 말이 회자된다. 처음엔 자유계약(FA)을 앞둔 시즌에만 반짝 잘한다는 조롱의 의미가 있었다. 이젠 꾸준한 활약으로 모범적인 선수생활을 한 그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다 떠나는 직장인들이 많다. 은퇴시기를 스스로 결정한 이호준과 달리 떠밀려 나가는 경우도 상당수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갖고서다. ‘인생은 이호준처럼’에 어울릴 만큼 열심히 일한 그들에게 미래 걱정 없는 은퇴가 보장되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김영석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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