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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식민지배’역사적 외상을 치유하라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강점기를 우리 민족의 주체적 관점에서 서술한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위 사진). 1945년 광복을 맞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고 있다. 웅진지식하우스·책과함께 제공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권장하여 참다운 인간이 되기를 바람이 본사(本社)의 주지다. …우리도 조선민족 2000만의 1인이라.” 도살업에 종사하는 백정들은 1923년 경남 진주에서 차별철폐를 위한 ‘형평사’ 창립대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일제강점기 대표적 인권선언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됐지만 백정은 여전히 호적에 신분이 표기됐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멸시를 당했다. 여성백정의 등에 올라타 노는 ‘백정각시놀음’도 소설 ‘토지’에 나온다. 형평사는 호적에서 백정 신분 표기 삭제를 요구했고 자녀 취학에 힘썼다. 여의치 않을 경우 강습소를 운영해 아이들을 가르쳤다.

형평사 조직은 전국 287개 지사·분사에 3만2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신간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는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독립운동이 민주주의 의식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실증한다. 자치·주체·권리·해방 등의 개념을 적용해 인물·단체·사건·운동 사상을 소개한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독립운동사를 다시 보도록 한다.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은 국민사관으로 대한제국(1897∼1910)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국민사관이란 국민의 뜻과 의지가 담긴 사관을 가리킨다. “대한제국은 근대화 개혁과 탈신분적 민국(民國)을 추구한 백성의 나라였고 고종은 백성의 근대적 변혁 열망을 대변한 계몽군주”라는 머리말이 내용을 암시한다.

대한제국이 1903년 이전 이미 경제 분야에서 도약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을 통계를 바탕으로 논증하고 사료를 근거로 독립신문과 독립협회의 실질적 설립자가 고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대한제국이 경제적으로 낙후하고 정치적으로 수구반동적이었기 때문에 자멸했다고 보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게 강력한 도전장을 던진다. 1000쪽이 넘는 대작이다. 하지만 대한제국을 ‘국내망명국가’나 항일독립투쟁을 수행하기 위한 비상국가로 규정하는 것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어보인다. ‘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은 대중적인 역사서다. 1870년대 개항기부터 1940년대 민족 분단까지 수탈과 투쟁의 질곡을 생동감 있게 기록한다. 약 10년을 단위로 주요 사건과 인물을 소개한다. 30년대 주요 사건 중 하나로 나오는 제주 해녀들의 경찰주재소 습격 사건. 제주도 해녀들은 32년 전복을 헐값에 사들이는 데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다. 관계자들이 일경에 연행되자 주재소를 습격해 이들을 구출해낸다. 경관이 해녀들의 목에 칼을 겨누며 위협했지만 해녀들은 “우리들의 요구에 칼로써 대하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대하겠다”고 맞섰다. 이런 생생한 목소리가 책 곳곳에 담겨 있다.

저자 박영규는 96년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출간한 이후 20년 넘게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를 내면서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왔다. 그는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외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독립투쟁사에 대한 단순 지식을 넘어서서 그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다 덮었을 때 일제강점기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각자 부여하게 될 것 같다. 다가오는 광복절에는 서점에서 이런 책들을 찾아보면 어떨지.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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