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한민수] 極中주의



개인이나 조직이 자신의 이념적 좌표를 설정하는 것은 때론 위험하다.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없는 말도 만들어내는 정치판에서는 특히 그렇다. 창당 때 노선 잡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가치를 중시해 중도보수 정당을 표방할 경우 상대방에게서 극우(極右)정당 또는 꼴통보수 정당이라는 비판을 듣기 일쑤다. 반대로 개혁에 무게를 두면 색깔론 공세를 당하기 십상이다. 극좌(極左)모험주의가 대표적이다.

지난 1월 원조보수정당 격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이 바른정당을 창당하며 좌표를 ‘개혁적 보수’로 잡은 것도 이런 속내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 국민 보기에는 말이 되는지 헷갈리지만 버무려 놓아야 득이 많다고 보는 것이다. 극우로 몰리지 않기 위한 고육책인 셈이다.

지난해 4·13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국민의당은 당 강령에서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주창했다.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안철수 전 대표는 ‘경제는 개혁, 안보는 보수’를 자주 입에 올렸다. 하지만 이 슬로건은 지난 대선에서 상대 후보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가령 국민의당 다수 의원들이 지지하는 햇볕정책을 계승할 것이냐는 질문에 곤혹스러워 하곤 했다. 그런 안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생소한 ‘극중(極中)주의’를 들고 나왔다. 그는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일들에 매진하는 것, 중도를 극도의 신념을 갖고 행동에 옮기는 극중주의의 중심에 국민의당이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극중주의로 정권을 잡았고 전 세계로 파급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당내에서조차 비판이 거세다. ‘듣도 보도 못한 구호’에서 ‘헛소리’라는 말까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 양당체제를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무튼 안 전 대표가 극중주의로 당 대표에 당선되고 정치인으로도 생존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한민수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