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건강

[안기종의 환자 샤우팅] 환자무시 3분진료 15분진료 정착 기대



‘3분 진료’는 우리나라 외래진료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청각적 풍경이다. 외국 의사들은 신기하다고 한다. 의사가 환자 진료차트를 확인하고, 증상이나 부작용 이야기를 듣고, 치료법을 결정한 후 약 처방이나 검사를 지시하는 모든 과정을 어떻게 3분 안에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의사들이 진료차트 확인, 증상 및 부작용 청취, 치료방법 결정, 약 처방 및 검사 지시 등 일련의 행위를 3분 안에 하고도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면 우리나라는 저(低)시간을 들이고도 고(高)효율을 내는 ‘3분 진료’ 노하우를 전 세계에 수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3분 진료’는 우리나라 의료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부끄러운 단면이다. ‘3분 진료’는 필연적으로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의사와 치료결과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높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3분 진료’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의사들이 진찰이나 검사 결과는 중시하는 반면 환자 경험은 경시하는 경향 때문이다. 이는 외래진료 때 의사들이 환자들의 증상이나 부작용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심지어 환자의 이야기가 조금만 길어지면 가위로 실을 자르듯 하던 말을 뚝 잘라버리기도 한다. 환자들은 ‘3분 진료’ 문화에 익숙하다. 그래서 의사가 3분 내에 진료를 끝낼 수 있도록 진료실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자신의 증상이나 복용한 약의 부작용 등을 1분 이내로 설명하기 위해 준비한다.

문제는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가 1분 이내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일부 의사들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과 억양으로 “아∼네, 알겠습니다. 됐어요”라며 말을 끊는다. 이후 컴퓨터를 보며 일사천리로 약 처방과 검사 지시를 하고 간호사는 다음 차례 환자를 부른다. 환자는 의사에게 하던 말이 끊기면 그때부터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그 뒤 일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온 뒤에서야 중요한 부작용이나 특이사항을 말하지 않은 것과 며칠 동안 궁금해 꼭 물어보고 싶었던 내용이 떠올라 간호사에게 의사 선생님 다시 만나게 해 달라며 옥신각신하는 모습은 흔하다.

의료 차트와 검사 결과만으로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을 이기고, 인공지능 ‘왓슨’이 암환자의 치료방법 결정에 참여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의사의 존재 가치는 계속적으로 추락할 것이다. 환자 치료에 있어 환자 경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의료지식을 습득하고, 의료기술을 배우는 것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환자의 설명이나 경험을 잘 듣고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과목도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러한 ‘3분 진료’를 과감하게 혁신하려는 시도가 올해 9월부터 서울대병원에서 시작된다. 전체가 아닌 호흡기내과 등 11개 진료과에 불과하고, 재진환자를 제외한 초진환자만 대상으로 하고, 1년간 임시 진행되는 시범사업이라는 한계도 존재한다. 그래도 ‘3분 진료’를 넘어 ‘15분 진료’의 새로운 문을 연다는 측면에서 그 함의가 크다. ‘15분 진료’ 중 의사가 증상이나 약물 부작용 등 환자 경험을 청취하는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나 적어도 5분 이상은 돼야 하지 않을까. 진료실에서 충분한 진료시간이 보장되고, 환자 경험을 잘 청취하는 문화가 조성되면 환자와 의사는 서로를 더 신뢰하게 되고 불필요한 치료와 검사도 줄고, 의료분쟁 또한 대폭 감소할 거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 한다. 이제 ‘진료시간’과 ‘환자경험’이 환자의 치료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가 학자들에 의해 활발히 진행돼야 하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