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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랑 레제 ‘시골 여행’


직장인은 짜증은 나겠지만 웬만한 스트레스로 금방 탈진되지는 않는다. 스트레스를 넘어 번아웃 증후군에 이르는 건 ‘회사원 OOO’과 ‘나’를 적절히 분리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과가 없으면 ‘나’의 존재가치마저 사라진다고 여기고, 과도한 업무를 감당하지 못한 것도 ‘내 역량이 부족해서’라고 자기 탓을 하면 열정은 이내 사라진다.

퇴근하면 회사일 싹 잊고 푹 쉬어야 기운이 회복될 텐데 번아웃된 직장인은 침대에 누워서도 일 걱정을 하며 잠을 못 이룬다.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면 회복도 더디고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생각과 감정 때문에 애를 먹는다.

휴가는 그래서 필요한 거다. 일이든 사람이든 특정 대상과 너무 밀착되면 지치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자아를 지켜내기 위한 ‘거리 두기’의 실천이 휴가다. 나를 직장에서 물리적으로 떼어놓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거창한 바캉스가 필요한 게 아니다. ‘회사원 OOO’이라는 이름표 떼고 ‘진짜 나’를 되찾는 것으로 에너지가 충전된다.

휴가로 기운을 얻기도 하지만 바캉스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왜 그럴까? 여름휴가가 소중한 건 맞지만 짧은 기간에 환상적 변화가 일어날 리 없다. 조금 모자란 듯, 조금 아쉬운 듯 여운을 남겨야 하는데 휴가도 일처럼 완벽한 계획 아래 통제하려고 하면 도리어 탈이 난다. ‘내가 없는 동안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하고 쉬면서도 일 생각을 하면 휴가의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심리학 연구 결과들은 휴가를 망치는 주범으로 완벽주의를 꼽는다.

휴가 후에 활력을 되찾더라도 효과는 약 2주에서 한 달 사이에 대부분 사라진다.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는 한 번의 긴 휴가보다 짧더라도 자주 쉬는 ‘프티 바캉스 (petit vacance)’가 더 효과적이다. 완전히 방전된 다음에 한꺼번에 완충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배터리 수명도 짧아진다. 휴대폰은 쓰다 바꾸면 그만이지만 평생 써야 하는 뇌는 한 번 고장나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자신도 힘들고 지켜보는 가족도 괴롭다.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오랫동안 탈 없이 쓰려면 방전되지 않게 틈틈이 충전해주는 게 좋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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