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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GM의 비밀경영… 한국서 발빼기 사전작업?

한국지엠의 전북 군산공장 직원들이 지난 2월 준중형 승용차 올 뉴 크루즈를 조립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산업은행은 ‘한국지엠㈜ 사후관리 현황’ 보고서를 통해 한국지엠의 국내시장 철수를 조만간 현실화될 수 있는 위기상황으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산은이 확보했던 자산처리 비토권 만료일이 임박해 GM 본사의 결정을 막을 수단이 없다는 한계점도 인정했다.

산은은 GM 본사와 한국지엠이 산은을 경영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산은의 한국지엠 자산처리 비토권이 상실되는 올해 10월 이후 GM 측이 국내 철수를 본격화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숨기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산은 보고서에는 ‘정보제약에 따른 GM의 전략 및 의도 등 사전파악 곤란’, ‘지분매각 또는 공장폐쇄 등을 통한 철수 시 저지수단 부재’ 등의 문구가 곳곳에 등장한다. 산은이 주주감사까지 나선 이유도 한국지엠이 자본잠식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지엠은 산은이 감사에 돌입하자 내부 법률검토를 거쳐 감사팀에 대부분의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감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사회 논의 과정이나 회의록 등도 산은에 제공하지 않았다. 경영개입은 물론 기본적 주주의 권리도 막아왔다는 게 산은의 판단이다. 산은은 한국지엠 이사 10명 중 3명에 대한 추천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산은이 추천한 사외이사 3명은 정부 출신이 아닌 대학교수 등 민간인으로 사내 의사결정 과정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은이 GM의 자산처리 비토권을 상실하는 것도 큰 문제다. GM은 2002년 10월 대우차를 인수하며 15년간 경영권을 유지키로 했다. 당시 산은이 채권단 대표로 출자 참여했고, 소수주주 권리로 주주총회 특별결의 비토권 및 이사추천권을 확보했다. 산업은행의 비토권 때문에 GM 본사는 한국시장에서 발을 빼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GM은 산은으로부터 독립된 경영권 확보를 위해 2012년 비공식적으로 산은에 지분매입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산은의 거부로 무산된 적도 있다. 올해 10월이면 산은의 자산처리 비토권이 사라지고, 한국지엠의 존폐 여부는 전적으로 GM 본사의 결정에 좌우된다.

산은은 한국지엠의 경영컨설팅 거부 및 감사방해 등을 지난해부터 금융위원회에 보고해 왔다. 그러나 금융위는 관련 보고만 받았을 뿐 구체적인 대응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관계당국 차원의 대책논의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보고서를 통해 “10월 이후 산은도 지분매각 방안 등 출구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지엠 측은 “주주계약서상 산은이 비토권을 상실한 이후에도 여러 가지 견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돼 있다”고 해명했다.

한국지엠 경영환경은 2014년 이후 악화일로를 걸었다. 글로벌 경기침체 및 인건비 상승으로 2016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냈고, 이 기간 손실액이 1조9717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올해 1분기에는 자본잠식 단계에 접어들었다. GM의 유럽 철수 등 글로벌 구조조정으로 한국지엠 수출이 급감하면서 실적 악화에 영향을 줬다. 여기에 GM 본사는 한국시장에서 통상임금 관련 법적분쟁 등을 겪으며 인건비 부담 및 노사갈등에 따른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GM의 글로벌 사업 재편 움직임도 한국지엠 철수설에 힘을 싣고 있다. GM은 호주(2013년), 러시아(2014년), 유럽(201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및 인도(2017년)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인도 투자도 철회(2016년·10억 달러)했다. 경영환경이 열악해지고 인건비가 비싸 적자가 쌓여가는 한국지엠을 떠안고 갈 이유가 없는 셈이다.

7월부터는 제임스 김 사장이 예정된 임기보다 7개월 빨리 사퇴하며 ‘한국지엠 철수설’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지엠이 지분을 매각하거나 주력 차종인 소형차 생산설비만 남기고 나머지 공장을 폐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지엠 측은 “본사가 경영상황을 근거로 노조와의 협상에서 비용 절감 등을 압박할 수 있지만, 사업철수 같은 급격한 변화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글=노용택 전웅빈 기자 nyt@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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