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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사랑은 ‘스킨십’으로 다져진다

‘터칭’은 쓰다듬고 만지고 보듬는 일련의 행위가 아기의 성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사진은 아기와 어른의 손가락이 맞닿아 있는 모습. 픽사베이 제공




그 학교를 취재하러 미국을 찾았던 건 8년 전 겨울이었다. 일리노이의 한 소도시에 위치한 학교의 이름은 ‘채덕(Chaddok)’. 채덕은 절도나 폭행 같은 범죄를 일삼았거나 조울증이나 분노조절장애에 시달리는 위기 학생을 관리하는 치료형 기숙학교였다.

방문 당시 눈길을 끌었던 건 ‘치료실(Therapy Room)’이라는 문패가 내걸린 작은 공간이었다. 부드러운 천으로 마감한 패브릭 소파가 눈에 띄었는데, 소파 주변엔 쌀이 담긴 상자나 핸드크림이 놓여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 이런 물건을 갖다놓은 걸까. 학교에 상주하는 심리치료사의 답변은 이랬다. “무언가를 만지면서 촉감을 느끼는 게 아이들의 격앙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좋거든요.” 당시엔 이 말에 담긴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영국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1905∼1999)의 ‘터칭’은 내가 8년 전 눙치고 넘어간 심리치료사의 답변이 무슨 의미인지 알려준 책이었다. 제목 ‘터칭(Touching)’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가 집중하는 건 촉각이 인간의 정신이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다. 해외에서는 1971년 출간돼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는데, 국내엔 최근에서야 번역·출간됐다.

저자는 피부의 인류학적·해부학적 특징을 늘어놓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감각의 진화”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건 촉각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촉감이야말로 “오감(五感)의 어머니”라고 추켜세운다. 피부는 인체에서 두뇌를 잇는 중요 기관이라는 주장도 내놓는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본격적인 스토리를 들려주기 전 울린 변죽일 뿐이다. 엄마와 아기의 스킨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를 보듬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행위가 자녀의 성장에 얼마나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지 들려준다. 포유류 동물들이 새끼를 핥고 만지면서 기르는 사례를 열거하면서 수많은 학자들이 내놨던 촉각 관련 이론을 포갠다.

지나친 해석으로 여겨지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저자는 영·유아기 촉각 경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이 시기 ‘터칭’의 부재에서 배태된다는 주장을 반복하는데, 웬만한 독자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던 건 모든 주장이 구체적인 사례나 과학적인 연구 성과에 기대고 있어서였다. 가령 모유 수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챕터를 보자. 엄마젖을 빠는 행위는 아기가 “호흡의 물꼬”를 트는 데 주효한 역할을 한다. 발화(發話)의 테크닉을 익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엄마와 교감하는 데도 중요한 의미를 띤다. 심지어 모유는 달콤하기까지 하다. 유당 함유율이 소젖은 4%에 불과하지만 엄마젖은 7%에 달하니까.

“타인과의 신체 접촉이야말로 편안, 안심, 온기의 근원이자 새로운 경험에 대한 적응력 상승의 원동력이 된다. 모유 수유는 바로 이 근원의 원류로, 모유 수유로부터 온갖 축복의 기도가 흘러나오며 이를 통해 아기는 앞으로 좋은 일들이 생기리라는 기대가 샘솟게 된다.”

노인의 촉각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전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저자는 “노인의 욕구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등한시되고 있는 것은 촉각 자극 욕구”라면서 이렇게 썼다. “나이 든 사람들이 애무와 포옹, 손을 다독이거나 꼭 잡아주는 행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만 봐도 이러한 경험이 이들의 행복에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까마득한 과거에 엄마 품에 안겨 세상을 바라봤을 내 모습을 상상했다. 인간은 한평생 누군가와의 접촉을 갈구하면서 살아가는,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도 되새길 수 있었다. 만약 당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주 상대의 손을 잡아주시길. 어깨에 손을 올리고 포옹을 하고 입도 맞추시길. 사랑은 곧 ‘터칭’이니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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