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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가슴 뭉클하게, 익살스럽게… 억압 비판하는 창의적 시위



이토록 다양한 시위가 이렇게 강력한 억압을 이처럼 창의적으로 조롱할 수 있다니. 세계적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장 스티브 크로셔가 쓴 ‘거리 민주주의: 시위와 조롱의 힘’(Street Spirit)은 전 세계에서 일어난 50여개 시위 현장의 모습을 7가지 주제로 나눠 소개한다. 컬러사진 79점이 수록돼 있다.

10만명 이상이 인종청소와 도시폭격 등으로 희생된 보스니아전쟁(1992∼95). 사람들은 무참한 죽음을 잊지 않았다. 전쟁 2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2012년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 중심가에는 빨간색 의자 1만1541개가 놓였다. 빈 의자는 전쟁에서 숨진 이들을 상징했다. 이중 작은 의자 643개는 희생된 어린이를 뜻했다. 당시는 주요 전범 라도반 카라지치의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이 시위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다시 일깨웠고 카라지치는 지난해 대량학살 등의 혐의로 40년형을 선고 받았다.

호주의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은 백인들에게 오랫동안 핍박 받은 호주 원주민 출신이었다. 2000년 호주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은 그녀. 원주민을 상징하는 깃발과 호주 국기를 몸에 함께 감고 육상 트랙을 돌았다. 호주 정부가 원주민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몇 해 뒤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호주를 대표해 원주민에게 그간의 잘못을 사죄했다.

샌드위치 먹기, 열쇠고리 흔들기, 시베리아 인형 전시, 우산 쓰기, 당나귀 머리 인형 쓰기 등 그야말로 다양한 시위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책은 상투적인 구호를 외치는 시위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면서 시위에 대한 역동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온갖 기발한 시위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시위 참가자들의 고통에 마음이 저려오기도 한다.

또 이 땅의 모든 시위 참가자의 열정과 용기에 감탄하게 된다. 크로셔의 서문대로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통해 관습적인 통념을 거부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길을 만들고 닦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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