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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국민연금 예의상 만났지만 ‘합병’ 관여 안했다”



2일 오후 4시40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증인석에 앉은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은 답변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질문을 재차 반복해 묻거나 답변 앞에 종종 2∼3초간 침묵이 흘렀다. “공주 승마 이런 건 몰랐다”고 할 땐 가볍게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지난해 말 국회 국정농단 청문회 때처럼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4시40분 시작한 이 부회장의 피고인 신문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진행된 이 부회장의 피고인 신문에서 그는 혐의를 피해가는 발언을 이어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독대 자리에서 직접 승마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 부회장은 “회사에서 알아서 잘 처리해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윤회 문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을 당시에도 딸(정씨)에 대해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삼성의 정씨 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도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최지성(66)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도 “삼성 주요 현안의 결정은 모두 내 책임하에서 이뤄졌다”며 이 부회장의 진술을 거드는 증언으로 일관했다. 이 부회장의 형사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검은 “2014년 8∼9월은 정윤회 문건이 공개되면서 당시 정씨와 최씨가 비선실세 노릇을 하며 국정 개입하고 있다고 세간이 떠들썩했고, 그 과정에서 딸 정씨가 승마선수로서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몰랐느냐”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국내 정치에 그렇게 관심이 없어서 정윤회 문건이나 ‘공주 승마’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특검이 “지난해 여름쯤 삼성 승마 지원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고 최 전 실장으로부터 지원 이유 등 들은 내용이 있느냐”고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최 전 실장이) 골치 아프겠다고 생각했지, 이 일이 이렇게 커져서 제가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특검은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들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논의하는 자리에 그가 참석한 이유도 물었다. 이 부회장은 “삼성 임원으로서 삼성 합병을 돕고 싶었고 공단 측에서 대표로 제가 참석해주길 요청했기 때문에 이에 응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나갔다”고 답했다. 예의상 국민연금과 만났을 뿐 합병에 깊이 관여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2015년 7월 25일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하기 이틀 전 박상진(64) 전 삼성전자 사장, 최 전 실장과 함께한 회의에서도 정씨 승마 지원은 논의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특검이 “7월 22일 제주도로 출장 가 있는 박 전 사장이 귀국해 다음날(23일) 오전 10시 회의에 참석할 만큼 급박한 사정이 있었느냐”고 질문하자 “독대 전날(24일) 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 회의에서 10분간 발언이 예정돼 있어서 이를 준비하는 데 더욱 신경을 썼다”고 답했다.

특검이 당시 회의에서 삼성이 정씨의 승마 지원을 논했다는 정황이 담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메모와 박 전 사장이 수신한 메시지 내역을 제시하고, 독대 직후 실제로 승마 지원이 추진된 사실을 추궁했지만 이 부회장은 “그날 회의에서 정씨 승마 지원 내용은 없었다”고 재차 부인했다.

앞서 진행된 피고인 신문에서 최 전 실장도 “최씨의 전횡으로 승마 지원이 정씨 1인 지원으로 변질됐으나 이를 부회장에게 알리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아 보고드리지 않았다”며 “(이 부회장께) 보고드렸으면 중간에 지원을 중지하거나 했을 텐데 후회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또 박 전 대통령이 단독 면담에서 JTBC를 이적단체라고 부르며 흥분했다고 밝혔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JTBC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이적단체라는 말까지 썼다. 삼성 계열사였으니 얘기를 좀 해달라고 굉장히 강하게 말했다. 독립 언론사이고 (홍석현 전 회장은) 손윗분이라고 하니 더 짜증을 내면서 굉장히 흥분해 얼굴까지 빨개졌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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